<27>인천 강화경찰서 형사팀 송화평 순경
키 2m·몸무게 130㎏의 거구, 복싱 국가대표 출신.
인천 강화경찰서 형사팀에서 근무하는 송화평 순경(32) 이야기다. 그는 2016 리우 올림픽에 이어 2020 도쿄 올림픽 출전 경력이 있다. 지난해 7월 무도 특채로 경찰에 입직한 송 순경은 남성 지원자 12명 중 유일하게 선발된 인재다. 중앙경찰학교 신임경찰 314기 졸업생 2191명 중 1등 교육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송 순경은 선수 시절 제49회 대통령배전국시도복싱대회, 제30회 대한복싱협회장배전국복싱대회,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 등 국내 굵직한 대회를 석권하며 한국 복싱 최중량급의 강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 순경은 운동선수로서의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 무렵인 30대에 접어들며 인생의 전환점을 고민하다 경찰의 길을 택했다. 결혼 후에도 태릉과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을 계속하면서 인천 부평구의 신혼집에 자주 가지 못했던 현실도 전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그는 "아내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처음엔 지도자 전향을 고민했지만, 경찰 무도 특채가 있는 걸 알고 도전하게 됐다"면서 "쌍코피를 서너 번 흘리며 열심히 공부와 훈련에 매진한 결과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됐다"고 했다.
송 순경은 강화서에서 형사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갓 3개월이 지난 새내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벌써부터 주민들 사이에서는 '현실판 마동석'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송 순경은 "'경찰 중에 키가 엄청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면서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범죄 피의자가 (체격 덕분에) 꼼짝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인지 동네 어르신들은 저를 든든하게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송 순경은 지난 3월 낫을 든 노인이 주민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다. 송 순경은 망설임 없이 돌진해 노인이 쥔 낫을 빼앗았다. 송 순경은 "큰 덩치 덕분인지 지금까지 대들거나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다"면서 "전화상으로는 거칠게 말하더라도 만나면 '진실의 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송 순경은 형사의 일상은 영화처럼 멋지지만은 않다고 했다. 경찰 수사의 경우 서류와 증거 확보가 범인 현장 검거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송 순경은 "감명 깊게 본 영화 '범죄도시'에서 형사 배역을 맡은 마동석씨는 범인을 멋있게 잡고 끝나는데 현실은 아니었다"며 "한 사건에 적게는 서류가 100쪽, 많게는 200쪽에 달한다"고 했다.
최근 있었던 분묘 훼손 의심 신고 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족은 누군가 굴삭기로 조상 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지만, 송 순경은 현장 확인과 분묘 전문가 3인의 의견을 종합해 장기간 방치로 인한 자연 훼손임을 입증했다. 송 순경은 "진실을 가리는 데는 꼼꼼한 기록과 분석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강화서 형사팀은 5명씩 2개 조로 나뉘어 주당 2번씩 24시간 당직근무를 선다. 송 순경은 당직을 설 때면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까지 근무를 한다. 그는 "운동선수 시절엔 운동과 회복이 분리돼 있었는데, 경찰은 회복할 틈이 잘 나지 않는다"며 "당직 때 갑작스레 사건이 몰리면 체력이 바닥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지칠 때면 아내, 갓 태어난 아기와 영상통화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송 순경은 "예전에 뛰었던 복싱 시합 영상을 찾아보거나, 기도하면서 마음을 정리하곤 한다"고 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보람찬 순간도 많다. 최근 협박 사건을 해결했을 때가 그렇다. 처음엔 단순한 말다툼 정도로 보였지만, 사건을 직접 수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송 순경은 피해자 진술과 주변 CCTV 영상을 면밀히 분석했고, 가해자가 단순한 언쟁이 아닌 농기구를 들고 위협한 사실을 밝혀냈다. 송 순경은 "단순 협박이 아니라 특수협박으로 죄명을 구체화해 송치한 건 제 수사 덕분이라 더 의미 있었다"면서 "형사로서의 소명 의식을 다시금 되새겼다"고 했다.
송 순경은 지난 3월 한 노부부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을 때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중요 부동산 서류를 잃어버린 노부부가 경찰서로 찾아왔고, CCTV 등 분석을 통해 찾아드렸는데 눈물을 글썽이셨다"며 "내가 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송 순경의 목표는 최고의 형사가 되는 것이다. '용감한 형사들'과 같은 형사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선배 형사들의 수사 방식과 자세를 보며 존경스러운 마음이 많이 든다"며 "개인적으로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한다"고 했다.
아울러 송 순경은 범죄자에게는 단호하고 국민에게는 따뜻한 경찰이 되려 한다. 형사라는 직책이 단순히 범인을 잡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최전선의 역할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송 순경은 "피해자가 나의 부모, 나의 아내, 나의 아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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