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출발해 일본 서안 곳곳 여행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 크루즈
럭셔리 객실…놀거리도 풍부
"영일만서 이까지 들어오기는 처음인데, 오늘 뭐가 있습니꺼?"
지난 5일 오후 4시 경북 포항 영일만신항. 현지 택시 기사도 가는 길이 낯설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던 이곳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렸다. 포항을 모항으로 하는 럭셔리 크루즈 '팬스타 미라클호' 탑승을 위해 신항 건물 밖에는 줄이 길게 늘어졌다. 30도에 육박하는 찜통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지만 승객들의 미소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팬스타 미라클호는 국내 기술로 처음 건조된 2만2000t급 소형 크루즈다. 길이는 171m, 폭은 25.4m로, 최대 35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을 갖췄다. 하이브리드식 구조로 아랫부분은 화물칸으로 설계됐다. 크루즈 투어를 하지 않을 때는 화물용으로 사용 가능하다.
미라클호는 이날 처음으로 포항~일본 서안 구간 비정기 크루즈에 나섰다. 포항 영일만을 출발해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 돗토리현 서부 사카이미나토를 기항하는 3박4일 코스다. 배에는 230여명이 탑승했다.
통상 부산, 제주 등 큰 항구를 모항으로 크루즈가 운항한다. 하지만 팬스타그룹과 포항시의 '영일만항 크루즈 관광산업 활성화 업무협약(MOU)'에 따라 특별히 포항에서 크루즈가 출발하게 됐다. 한 탑승객은 "포항에 살고 있는데 매번 울릉도만 가봤지, 크루즈 타고 일본 가는 건 처음"이라며 "주변에서도 다 부럽다고 난리다. 괜찮으면 다음에 또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 위 '5성급 호텔'…면세점·사우나·네일아트까지
크루즈에 승선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로비로 들어서자 시원한 폭포 소리와 피아노 공연이 반겼다. 메인 홀 기둥을 타고 흐르는 물길이 시원한 느낌을 줬다. 첫 승선을 기념해 오렌지빛 칵테일이 웰컴 드링크로 여행의 첫 출발을 알렸다.
승선 시간도 길지 않았다. 수천 명이 움직이는 일반 대형 크루즈는 탑승하고 방을 찾는 데만 3~4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미라클호에서는 1시간 안에 모든 출항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캐리어는 출항 전 승무원들이 한데 모아 각 객실 앞에 직접 가져다주는 '캐리 서비스'가 제공된다.
미라클호의 부대시설과 객실은 5층부터 7층에 마련됐다. 내부 공간은 최신 크루즈인 만큼 세련된 인테리어로 채워졌다. 공용 공간과 식당, 객실 모두 베이지, 주황색 등 따뜻한 질감의 가죽으로 덮인 가구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방염 소재로 제작된 가구들로 벽면에 걸린 그림들도 불에 타지 않는 자재를 사용했다.
객실은 총 4개로 구성됐다. 특히 고급 객실인 로얄 스위트 객실은 발코니를 비롯해 주류 무제한 등 특별 서비스가 제공된다. 편의용품(어메니티)으로는 럭셔리 니치향수 브랜드인 '아쿠아 디 파르마' 제품이 제공된다. 발코니가 있는 객실은 의자에 앉아 뻥 뚫린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식사 공간은 7층 '마스카라데'였다. 이곳에서는 바다와 항구의 정경을 바라보며 뷔페식을 즐길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공하며 끼니마다 새로운 메뉴가 제공된다. 스테이크와 돼지갈비, 오리고기, 찜닭 등 푸짐한 육류 요리가 저녁에 제공되고 조식에는 생선구이와 나물 반찬 등 간단한 한식 요리와 빵, 과일 등 브런치 메뉴도 제공됐다. 로얄 스위트 객실을 선택한 승객들에게는 저녁에는 스테이크 코스 요리, 조식에는 브런치 코스 요리가 제공된다.
부대시설은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했다. 5층에는 카지노, 테라피 하우스, 사우나, 피트니스 룸이 개방돼 있다. 카지노에서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카지노 게임, 룰렛 등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한쪽에는 네일아트를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면세점은 작지만 알찼다. 일본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위스키, 사케 등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돼 탑승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는 키즈 클럽은 폭신한 바닥 재질에 책과 게임기가 있어 어린이들이 앉아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만들어졌다. 8층 데크 야외 수영장은 바다 위 풍경과 함께 '인생샷'이 가능했다.
소도시 매력…"일반 여행객 잘 못 오죠"
팬스타 미라클호가 나선 이번 여정의 또 다른 묘미는 일본의 '소도시'를 누빈다는 점이다. 소형 크루즈이기에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도 정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렸다. 실제로 첫 기항지 마이즈루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정경은 도쿄,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출입국 심사를 위해 창고를 개조한 터미널이 소박하게 마련됐고, 넓은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단층으로 이뤄진 집들이 간간이 몰려 있어 고즈넉했다. 크루즈에서 내리는 짧은 동선은 '레드카펫'이 깔려 귀빈이 된 듯했다.
마이즈루에서 직접 소량의 해산물을 맥주와 함께 맛볼 수 있는 수산물시장 '토레토레센터', 일본의 3대 절경인 '아마노하시다테 뷰랜드', 교토 수상가옥 '이네후나야'를 방문하니 7시간이 훌쩍 지났다. 대중교통 혹은 도보로 쉽게 오갈 수 있는 대도시 여행과 달리 단체버스로도 길게는 30분 이상을 이동해야 다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들 지역은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다른 패키지여행으로는 갈 수 없는 장소들이다.
두 번째 기항지인 사카이미나토에서도 개인 차량 없이는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들로 투어가 구성됐다. 일본 요괴만화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거리', 국보로 지정된 '마쓰에성', 작약·바위 등 조경이 뛰어난 '유시엔 정원'을 차례로 둘러봤다. 크루즈 탑승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본 현지의 가족 단위 관광객들로,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팬스타 미라클호의 입항을 환영하는 지역 주민들의 공연도 인상 깊었다. 마이즈루에서는 선원 모자를 쓴 게 인형 마스코트의 댄스와 함께 어린이들이 북 공연을 하며 크루즈를 맞이했다. 크루즈가 항구를 떠날 때는 주민들이 모여 휴대폰 조명을 켜고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외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사카이미나토에서도 흰옷을 갖춰 입은 현지 댄스팀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손을 크게 흔든 뒤 축무를 펼쳤다. 이들 지역에서는 배가 방문하는 것을 '축제'처럼 여기고 환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했다.
"엉덩이가 들썩"…지루할 틈 없는 크루즈식 콘텐츠
크루즈의 백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체험 콘텐츠들이다. 비행기를 생각하고 잔뜩 다운받아간 넷플릭스 작품들은 단 한 편도 재생하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화려한 공연들이 진행된다. 3인조 라이브 퍼포먼스 그룹 '리얼플레이어즈'와 트로트 가수 '박진'의 공연은 승객들이 어깨춤을 추게 했다. 승객 연령대가 50대 이상으로 구성돼 트로트 가수를 섭외했다는 것이 팬스타 측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노래 경연대회, 댄스 타임, 경품 추첨 등의 시간도 마련됐다.
다재다능한 승무원들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승객 응대를 비롯해 피아노, 마술, MC처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크루즈 승무원들은 한국인을 비롯해 필리핀, 일본 등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됐다. 낮에는 정장을 차려입고 음식 접시를 나르다가도, 저녁이 되면 악기를 연주했다. 팬스타 관계자는 "심리스(SEAM LESS), 즉 경계선이 없고 끊임없이 엔터테이닝적인 요소가 계속 이뤄지도록 구성했다"며 "승무원의 경우 직접 필리핀으로 가서 오디션을 보고 여러 자질을 갖춘 승무원들을 채용한다"고 전했다.
마이즈루(일본)=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마이즈루(일본)=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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