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이해집단 저항 넘는 '정치적 리더십' 필요
금리 인하 기조 유지하되 폭·시점 신중히 할 것
"손쉽게 경기 부양하려 부동산 과잉투자 용인했던 과거 관행 떨쳐내야"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 외환시장 규제 우회 않도록 제도 마련 필요
"한은 특화 AI, 하반기 도입 목표"…네이버클라우드서 구축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창립 75주년 기념식에서 "급하다고 경기부양 정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면 사후적으로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시급한 부양책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 하락을 막고 경기 변동에 강건한 경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구조개혁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개혁,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이해집단 저항 넘는 '정치적 리더십' 필요
한은은 지난달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제시했다. 이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총재는 "불과 3개월 만에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0.7%포인트나 낮춘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은은 이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만큼 경기부양 정책이 시급해졌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어느 정도의 경기부양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낮은 성장률을 단순히 경기순환의 관점뿐 아니라 구조적인 시각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4% 수준이었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지금은 2%를 밑도는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높은 대외 의존도와 일부 산업에 집중된 수출 구조 등으로 경기 변동의 진폭은 축소되지 않았다. 이 총재는 "그 결과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역성장이 나타날 가능성은 2024년 기준 약 14%로, 10여년 전에 비해 3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구조개혁 페이퍼'를 통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기저에는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며 '거점도시 육성'과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고, 고령화 충격 완화를 위해 고령층 계속 고용을 비롯해 돌봄서비스 개선 방안, 퇴직 후 주택연금 활용 방안 등도 내놨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일부 품목에 집중된 산업구조의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지식서비스'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유럽에서도 지난해 9월 '드라기 보고서' 등을 통해 유럽의 경쟁력 약화 원인을 중장기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면서도 "그간 유럽에서 구조개혁 진전이 더뎠던 건, 드라기 보고서에 담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개혁은 항상 이해관계 간 충돌을 피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충분한 조율과 사회적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집단의 저항에 부딪혀 좌초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의 리더십 발휘를 주문했다.
"손쉽게 경기 부양하려 부동산 과잉투자 용인했던 과거 관행 떨쳐내야"
한은의 통화정책 역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정책과 긴밀한 공조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 역시 당분간 이어간다. 다만 구체적인 인하 폭과 시점은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고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투자를 용인해 온 과거의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상용화 단계 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한은의 디지털 화폐(기관용 CBDC)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총재는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등 현재의 지급결제 시스템도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지금의 편리함에 안주할 수는 없다"며 "은행, 증권, 간편결제, 보험 등으로 분절된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하는 미래금융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선 모든 금융기관이 연결된 공통의 디지털 화폐 기반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모든 참여자가 신뢰할 수 있는 공통의 결제 단위가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뜨거운 감자인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의 대체 기능이 있는 만큼 외환시장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은은 올 하반기 '한은 전용 생성형 AI 플랫폼'을 도입한다. 공공기관 중 첫 시도로 플랫폼 구축은 네이버클라우드가 맡았다. 이 총재는 "국내 업체가 구축한 '소버린 AI'를 기반으로 한은에 특화한 AI를 개발하고 있다. 올 하반기 도입이 목표"라며 "이번 사업이 국내 AI 산업 발전을 위한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존 '망 분리 정책'에서 탈피한 '망 개선 파일럿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이 총재는 "AI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클라우드 컴퓨팅이 필수적"이라며 "한은은 자체 AI 도입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협력해 망 개선 파일럿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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