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희 IBM 퀀텀 알고리즘 센터 총괄 디렉터 인터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양자산업 성패 가른다”
인재 많고 기술력 있는 韓
정부 선제 투자 중요…민·관·학 함께 가야"
"양자 우위(Quantum Advantage)가 이뤄지면 소재, 신약 개발 등에서 기존에 없던 연구가 가능해질 겁니다."
아시아경제가 주최한 '2025 아시아미래기업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백한희 IBM 퀀텀 알고리즘 센터 총괄 디렉터(박사)는 11일 인터뷰에서 양자컴퓨터의 산업 적용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백 박사는 "물질의 에너지 상태 계산을 넘어 시간에 따른 물성 변화나 분자 간의 화학 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양자 우위의 의미를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백 박사는 현재 IBM에서 양자 알고리즘과 시스템 개발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양자 기술의 산업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 직전 IBM은 2029년까지 200개의 논리 큐빗을 기반으로 오류 없이 1억단계 이상의 양자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스탈링(Starling)'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해 전 세계 양자학계와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지만 오류 해결은 만만찮은 과제다. '오류 내성 시스템', 즉 연산 중에 발생하는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는데 IBM이 이를 해결한 제품을 내놓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양자 우위가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에는 2000개 논리 큐빗, 10억단계 연산이 가능한 '블루제이(BlueJay)' 시스템으로 성능을 확대할 예정이다. 백 박사는 "양자 우위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IBM은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 박사는 그러나 "양자 기술의 진짜 관건은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라고 진단했다. 이 분야는 아직 무주공산에 가까울 정도로 확대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의 양자컴퓨터 개발 역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박사는 "양자 알고리즘은 단순한 코딩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발명하는 일"이라며 "양자 기술에 익숙한 '양자 네이티브' 세대가 자라나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IBM은 서울대, 연세대 등과 손잡고 양자 전문 인력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부산·경남에선 대학생과 기업인을 대상으로 양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양자 기술은 단기간에 경제적 효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초기 단계에선 정부의 선제적 투자가 중요하다. 미국은 2018년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해 연구개발(R&D)과 민관 협력, 인재 양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일본도 '양자 기술 혁신 허브'를 통해 학계와 산업계 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통합된 전략이나 컨트롤타워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백 박사는 "한국은 인재도 많고 기술력도 있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하면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분야에도 균형 있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양자컴퓨터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백 박사는 양자분야에서 일본과 한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분야를 선도하고 있지만, 일본도 양자 강국인 만큼 협력에 따른 시너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산업계와 학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협력 구조를 통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백 박사는 대표적인 사례로 도쿄대가 주도하는 'QII(Quantum Innovation Initiative)'를 들었다. 이 컨소시엄에는 도쿄대, 게이오대, 도쿄농공대 등 주요 대학뿐 아니라 소니, 히타치, 도요타, 미쓰비시, 소프트뱅크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참여해 양자컴퓨터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하며 산업 적용 가능성을 검증해 왔고 지금까지 140편 이상의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하는 성과를 냈다. 기술 개발이 각개전투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협력 구조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백 박사는 "(일본은) 한국과의 교류에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와 결합해 더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IBM은 이를 '양자 중심 슈퍼컴퓨팅'이라고 부른다. 이는 양자컴퓨터를 기존 고성능 컴퓨터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삼아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슈퍼컴퓨터 강국이다.
백 박사는 "앞으로는 양자컴퓨터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뇌를 모방한 뉴런 컴퓨팅까지 통합된 새로운 형태의 컴퓨팅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그 중심에 서기 위해선 지금부터 협력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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