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연구원 "딥테크 투자엔 '인내자본' 필요"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세계 3대 강국' 비전을 내걸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예고한 가운데, AI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인내자본'으로서 벤처캐피털(VC)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 모태펀드 확대 등 정책이 연쇄적으로 추진될 전망인 만큼, AI 원천기술 개발 생태계에서 민간 벤처투자의 활동이 한층 중요해질 전망이다.
"한국 AI 스타트업, 美 대비 연구 역량 격차 커"
김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딥테크로 분류되는 AI는 일반 기술에 비해 사회적 파급력이 크지만, 상용화까지 불확실성이 높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 검증과 시장 형성까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딥테크 스타트업엔 인내자본의 성격을 갖춘 VC의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 분석 결과,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은 한국보다 약 13배 많은 AI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특히 미국 비상장기업의 논문 등록 건수는 한국보다 17.3배 많았다"며 "미국 스타트업은 AI 원천기술 개발의 핵심 주체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스타트업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AI 논문 게재 주체를 보면, 미국에선 상장기업(13.2%)과 비상장기업(6.3%) 등 민간 부문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의 AI 연구가 대학과 연구기관 중심으로 이뤄져 스타트업 등 민간 부문의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은 스타트업의 연구개발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인내자본이 활발히 공급되고, AI 스타트업이 단기 수익 압박 없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며 "반면 한국은 AI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 벤처투자 규모가 매우 작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큰 기술 분야에 자금이 흐르지 않는 전형적인 시장 실패"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천기술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정책 모펀드의 전략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규모 자금 유입…AI 벤처투자 '게임체인저' 될까
대규모 투자도 국내 AI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제다. 올해 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가 '1조2000억원에 회사를 팔라'는 미국 메타의 제안을 고심 끝에 거절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내엔 특정 AI 스타트업에 대규모 자금을 댈 여력을 갖춘 VC가 사실상 전무하다. 한 국내 중견 VC 대표는 "현실적으로 주요 대기업 정도가 수조 원의 투자를 진행할 수 있지만, 현재까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곳이 없다"며 "정부가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든, AI 벤처투자 활성화든 물꼬를 터주면 상황이 본격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미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공공·민간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GPU 5만개 이상 확보, AI 데이터센터 건설,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정부가 민간 투자 마중물이 돼 AI 관련 예산이 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증액하고자 한다"고 밝혔고, 취임식에서도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431조7000억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이 벤처투자에 허용될 경우 대규모 자금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태펀드 예산을 확대하고,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허용하며 연기금이 참여하는 벤처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된다.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도 추진된다. BDC는 공모를 통해 투자금을 모아서 비상장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상장 폐쇄형 펀드다. 투자 기업이 수익을 내면 이를 배당으로 나눠준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의 벤처투자가 허용된다면 대규모 자금이 벤처기업에 투자될 수 있다"며 "자금력이 있는 대형 VC는 상당한 자금 유입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AI가 벤처·스타트업 등의 성장엔진으로 작동할 것이며, AI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AI 관련 각종 펀드가 조성될 뿐만 아니라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AI 관련 LP(출자자) 출자사업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 인내형' 투자 기조 확보해야"
스타트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투자 주체가 '장기 투자' 성향을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김 연구위원은 "딥테크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펀드일수록 LP 구성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필수적"이라며 "대규모 자금을 출자하는 LP는 VC 운용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고객으로 LP의 위험 선호도와 투자 성향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패밀리 오피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대학기금, 재단, 확정기여형 연금 등이 높은 수익률을 위해 고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투자 성향을 기반으로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며 "이러한 LP들은 기술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딥테크 분야에 적합한 투자자군"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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