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연달아 기업 인수…국내선 '잠잠'
홈플러스 사태에 비판 커져 위축
재벌 3세 지분율 노린 새 전략 흔들
일본으로 안정적 노선 전환 가능성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투자의 무게 중심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기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로 불거진 비판 여론에 대한 부담이 커진 가운데 고려아연, 한국앤컴퍼니 등 재벌 3세의 취약한 지분율을 노리는 전략이 주춤하자 당분간 안정적인 투자 전략으로 노선을 바꾸는 모양새다.
日 투자 연달아 진행…국내선 잠잠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최근 일본 공작기계 제조업체 마키노후라이스제작소(마키노) 인수에서 배타적우선협상자 지위를 획득했다. 인수가는 2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MBK는 최근 국내에서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인수에 소극적이거나 올해 상반기 가장 큰 규모의 거래였던 SK실트론 인수에 참전하지 않았다.
실제로 MBK가 국내에서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고 성사한 거래는 지난해 4월 지오영 이후 전무하다. 커넥트웨이브에 1조원을 투입한 것은 과거 투자에 이은 후속 투자였다. 이와 반대로 일본에서는 활발한 투자를 이어갔다. 김병주 MBK 회장이 올해 초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 따르면 MBK는 지난해 초 노인 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기업 히토와홀딩스 인수에 3억3620만달러(약 4620억원)를 투입했다. 이후에도 ▲일반의약품 제조사 아리나민제약(7억370만달러) ▲반도체회로 제조사 FICT(2억5520만달러) ▲자동차부품사 마렐리홀딩스(3340만달러·부실채권 합동인수) ▲빌딩관리업체 JBRS(9300만달러) 등 활발히 투자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MBK의 주 활동무대가 아예 일본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너무 커진 고래…中 막히고 韓 시장 한계
MBK는 과거부터 동북아 지역에 전문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신규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거래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고, 국내와 일본을 주 무대로 삼고 활동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상황이었다. 그간의 성공으로 커진 덩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MBK의 운용자산(AUM)은 310억달러로 바이아웃 펀드 1개의 규모가 10조원에 이른다. 통상 펀드 1개당 10개 내외로 투자한다. 대부분 조(兆) 단위 딜에 참여해야 펀드 설정액을 소진할 수 있는 셈이다. PEF들이 보통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점을 감안하면 MBK는 최소 수조원대 이상 투자 대상을 여러 군데 찾아야 한다. 국내 주식시장의 국민연금처럼 시장이 수용하기 버거운 '고래'가 된 셈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웬만한 규모가 되면 무조건 MBK부터 찾아가는 것도 이 같은 상황 때문"이라며 "점점 적정 가치에 투자할 옥석을 가리기도 쉽지 않은데 수요자들은 높은 가격만 불러대니 MBK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재벌 3세 지분율 공략 '새 전략'
이에 MBK는 최근 들어 국내 재벌 3세의 취약한 지분율을 공략하는 전략을 대안으로 세웠다. 2023년 한국앤컴퍼니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것은 일종의 예행 연습으로 풀이된다. 형제간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아 MBK가 무게추 역할을 할 수 있고, 당시 경영권을 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각종 횡령·배임 소송에 휘말려 명분 싸움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지분 공개매수 경쟁 때 각종 조건을 내건 것도 안전장치 겸 시뮬레이션의 일환이었다는 평가다.
한번 모의평가를 경험한 MBK는 지난해 고려아연 공략에 나섰다. 경영권을 쥐고 있는 2대 주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지분율이 17%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을 노리고 1대 주주인 영풍과 손잡고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순환출자 논란 등으로 이사회 장악은 실패했지만 상대방보다 웃도는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논란이 불거지면서 모든 게 중단됐다. MBK가 사회악으로 취급될 정도로 비판 여론도 거세졌고, 김병주 회장은 초유의 압수수색 및 출국정지 조치를 당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많은 대기업이 3세 경영 시대로 넘어오면서 지분율이 취약한 곳들이 상당했기 때문에 고려아연 케이스를 성사시켰다면 해외 초대형 출자자(LP)들에 새로운 한국 수익모델을 충분히 세일즈할 기회였다"며 "예상치 못한 사태로 좌초 위기에 빠지자, 각종 번거로운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장으로 일단 무게 중심을 옮기자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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