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림포장 시화공장 가보니
업계 최초 기술연구소 운영
고강도 특수상자 개발…원가 절감 효과
코로나19 이후 주춤하자 신기술 개발
"친환경·높은 경제성 지닌 제품 확대"
"보세요, 싱글 월(SW) 상자가 버티는 힘이 더 셉니다."
지난 21일, 경기 시흥시 태림포장 기술연구소에서 만난 장정원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장 연구원 앞에는 '골판지 상자 압축강도 측정기'(BCT)와 함께 압력 그래프가 깜박이고 있었다. 압축강도는 골판지 상자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골판지 상자를 측정기에 넣으면 프레스가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는데,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상자가 파열되는 시점에 그래프는 우상향하다 오른쪽 밑으로 꺾인다.
실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일반적으로 더 강할 것으로 예측되는 '더블 월'(DW) 상자의 최대 강도는 237kgf(킬로그램포스)를 나타낸 반면에 '싱글 월'(SW) 상자는 315kgf를 기록했다. 싱글 월이란, 골판지 원지 두 장에 골심지(표면지와 이면지 사이에 들어가는 물결 모양의 골) 한 장을 넣은 구조를 말한다. 더블 월은 골판지 원지 세 장에 골심지 두 장을 넣은 구조다. 종이를 5겹(더블 월)에서 3겹(싱글 월)으로 줄였음에도 압축 강도는 그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장 연구원은 "'종이를 굳이 5겹이나 써야 하나?'하고 의심한 결과, 골심지를 한 장만 사용해도 성능을 극대화한다면 유사한 강도를 발현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며 "결과적으로 종이 사용량은 20% 줄이면서 골판지 강도는 20%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강도 특수상자'의 최대 장점은 종이 사용량을 줄인 만큼 제품 원가를 5~10%가량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자를 생산하는 태림포장과 구입하는 고객사 모두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엔 원가 절감 수요가 높은 대형 식품사와 e커머스를 중심으로 신규 주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는 전체 매출에서 해당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5%가량이지만, 이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게 태림포장 측의 설명이다.
장 연구원은 "고강도 상자가 태림포장에서만 생산하는 특수한 제품이다 보니, 고객사 입장에선 '호환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뛰어난 경제성으로 인해 기존 제품에서 해당 제품으로 주문을 바꾸려는 고객사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 고강도 상자는 태림포장 연구개발(R&D)의 결과물이다. 1976년 설립된 국내 골판지 원지 업계 1위 업체 태림포장은 기술 차별화를 위해 업계에서 유일하게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1시간 동안 냉장육 온도를 10℃ 이하로 유지하는 보냉상자, 공간 활용도와 압축 강도를 모두 높인 8각·12각 상자 등을 자체 개발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날 방문한 시화 공장은 태림포장의 기술력이 집약돼 있다. 이곳에선 골판지 원단 생산 기계인 '골게터'(corrugator)가 육중한 기계음과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골게터 옆으론 제지사에서 들여온 커다란 원지 더미들이 쌓여있었다. 원지가 골게터 안으로 들어가면 '골판지 원단'이 제조된다. 이렇게 생산된 골판지 원단은 다시 가공 기계로 들어가 '골판지 상자'로 재탄생한다. 또 다른 벽면엔 거대한 로봇 시스템이 골판지 박스를 자동으로 쌓아 올리며 포장하고 있었다.
이같은 노력은 코로나19 이후 주춤하고 있는 국내 골판지 원지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은 코로나19가 절정이던 2020년에 578만3000t으로 최고치를 찍었다가, 지난해 557만3000t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친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골판지는 플라스틱 등을 대체할 친환경 포장재로서 주목받고 있다.
정우철 공장장은 "태림포장은 앞으로도 기술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고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만족하는 제품들을 선보일 것"이라며 "업계 최고 기술력으로 물류 효율성 개선과 함께 탄소 저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시흥 =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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