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아츠 "엔비디아, 자사 특허 침해"
3월 美 텍사스 서부지방법원 소송 제기
"889 특허 분쟁, 韓 기술 대가 확보 움직임"
국내 반도체 팹리스 기업이 글로벌 공룡 기업 엔비디아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국내 산학 협력 연구로 탄생한 'K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국내 기술의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려는 적극적 움직임에 K특허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26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에 모회사를 두고 있는 실리콘아츠는 엔비디아를 상대로 자사의 특허 1건을 침해했다며 미국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특허는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real-time ray tracing)' 그래픽 하드웨어 기술에 관한 것으로, 엔비디아 GPU 제품에 구현됐다는 주장이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은 가상의 광선이 물체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굴절·투과하는 경로를 추적해 사실적인 영상을 생성하는 그래픽 처리 기술이다.
소장에 따르면 해당 기술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브랜드인 지포스 RTX 20, 30, 40, 50 시리즈와 전문가용 그래픽 카드인 쿼드로 RTX, AI 머신러닝에 쓰이는 데이터센터용 텐서 코어 등에 들어가는 GPU에 쓰였다.
GPU 기반 팹리스 기업인 실리콘아츠는 박우찬 세종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와 공동 연구를 통해 2009년 해당 특허를 한국에 출원한 후 PCT 국제출원을 거쳐 2016년 미국에 출원했고 2018년 등록됐다. 2019년에 이 특허는 실리콘아츠 단독 소유로 정리됐다. 미국에서 특허 번호 US9965889로 등록돼 일명 '889 특허'로 불린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출신 윤형민 대표가 설립한 실리콘아츠는 자체 개발한 GPU 지식재산권(IP)을 반도체 기업에 라이선싱해온 기업이다. 2022년 중국의 베리실리콘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래픽 IP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해왔다.
실리콘아츠의 일부 지분은 국내 특허관리전문회사(NPE)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가 보유하고 있다.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는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내 기업의 특허 분쟁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민간이 합동으로 출자해 설립된 기업이다. 실리콘아츠가 보유한 특허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소송은 원고인 실리콘아츠 미국법인이 엔비디아 본사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싱가포르 지사까지 피고에 포함시킨 점이 특징이다. 미국법상 외국 회사는 원칙적으로 어느 관할구에서도 피고가 될 수 있다. 엔비디아 싱가포르 법인이 미국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간접적으로 특허 침해에 관여했는지를 따질 것으로 보인다. 원고는 엔비디아가 해당 기술을 5년 이상 고의적으로 무단 사용해왔다며 ▲특허침해 금지명령(가처분 및 영구 금지명령) ▲과거 손해에 대한 법정 최소 합리적 로열티 이상의 손해배상과 소송비용 ▲고의침해에 따른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및 변호사 비용상환 등을 청구했다.
국내 NPE가 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상대로 미국에서 특허 소송에 나서면서 IP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국내 NPE 아이디어허브도 미국 자회사를 통해 애플을 상대로 반도체 특허 소송 중이다. 아이디어허브는 지난해 2월 애플의 IT 기기에 들어가는 A시리즈, M시리즈 칩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에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디어허브는 LG전자에서 IP 업무를 담당했던 임경수 대표가 2016년에 설립한 NPE다. 아이디어허브와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가 각각 빅테크들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은 특허권자에 유리한 판결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재산보호원은 "국내 기술 개발자가 보유한 특허를 국제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면서 "미국의 특허 친화적 관할지를 활용해 거대 기업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거는 것은, 이른바 'K특허 전쟁'의 본격화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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