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키징 공정 '캐필러리'
中에 제작기술 빼돌리려던 남성
김포공항 출국 직전에 잡아
"기술유출 국가적 경각심 커져
긴급체포 필요할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방증"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서 핵심 기술로 꼽히는 '캐필러리(capillary)' 제작기술을 중국에 넘기려던 40대 남성 A씨가 출국 직전 긴급체포됐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유출' 사범을 사법당국이 긴급체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산업기술 보호가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6일 법조 및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A씨는 국내 반도체 부품업체 B사에서 일하면서 익힌 '캐필러리' 제작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캐필러리는 반도체를 조립하는 마지막 공정 중 하나인 '패키징' 과정에 필요한 필수 장비다. 반도체 칩과 기판을 얇은 금속 선으로 연결하는 '와이어 본딩'이라는 작업에 쓰인다. 캐필러리는 이때 칩과 리드 단자를 와이어로 정밀하게 연결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대기업들도 이 회사의 캐필러리를 사용해 고성능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인공지능(AI)용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B사는 캐필러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작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최근 이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던 A씨를 출국 직전 김포공항에서 긴급체포했다. 기술유출 혐의를 받는 사범을 긴급체포 방식으로 신병을 확보한 첫 사례로 꼽힌다. 긴급체포는 형사소송법상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 또는 도주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검사 또는 경찰 등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 없이도 긴급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 기술을 국외로 누설하는 행위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로, 긴급체포 대상이다. 하지만 기술유출 사건에선 소극적인 경향이 강했다.
이번은 달랐다. A씨의 행적을 주시해오던 경찰은 그가 중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국가정보원, 공항 경찰대, 항공사 등 관련 기관들에 협조를 구한 뒤 곧바로 출동했다. 경찰이 오는 사이 A씨가 탄 비행편의 항공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약 8분간 이륙 시간을 늦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내방송을 통해 A씨를 비행기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했고 도착한 경찰이 그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A씨를 경찰서로 데려와 출국하려던 경위와 기술유출 여부 등을 조사하고 3일 뒤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발부받았다. 약 2주를 더 조사한 경찰은 A씨를 검찰로 구속송치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긴급체포는 최근 기술유출에 대해 국가적으로 경각심이 커진 상황에서 관련 기관들이 합심해 이뤄낸 성과"라면서도 "긴급체포가 필요해졌을 만큼 우리나라의 기술유출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라며 "최근 고도화되는 기술유출 시도에 대해 내부적으로 정밀 시스템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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