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코로나19 특수의 상징이었던 진단키트 기업들이 진화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서 나아가, 폐암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중증 질환까지 진단 가능한 정밀의료 기술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체외진단 기업 후지레비오(Fujirebio)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 진단키트의 승인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은 지금까지 주로 MRI(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단층촬영) 같은 고가 영상장비와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진단돼 왔다. 하지만 이번 승인으로 이젠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도 초기 진단이 가능해지는 길이 열렸다. 후지레비오의 키트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축적되는 대표적인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의 농도 비율을 분석해 뇌에 병리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미국에서 상용화된다.
국내 기업들 역시 기술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압타머사이언스는 최근 인도의 대형 병원과 협력해 폐암 조기진단 키트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키트는 혈액에서 특정 바이오마커(생체지표) 결합 여부를 분석해 폐암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고 고위험군을 조기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진단키트의 진화는 코로나19가 전화위복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막대한 진단 수요가 발생하면서 대량 생산과 신속 정확한 검사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로 인해 진단기업들은 기술적 역량을 급격히 향상시킬 수 있었다. 혈액에서 특정 질병과 관련된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고가의 영상장비 없이 간편한 혈액검사만으로 질병 진단이 가능해졌다.
코로나19 이후 매출 급감이라는 '진단키트 절벽'을 경험한 국내 대표 기업들도 반등에 나서고 있다. SD바이오센서는 최근 에이즈(HIV),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말라리아, 혈당 측정 등 감염병 및 만성질환 영역으로 제품군을 확장 중이다. 씨젠도 기존 분자진단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넘어서 성병, 결핵, HPV(자궁경부암 원인 바이러스) 등 비(非) 코로나 분야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 들어 가시적인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진단키트 대표기업인 에스디바이오센서와 씨젠은 올 1분기 나란히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매출액과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1분기 매출액 18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증가했다. 씨젠도 1분기 매출액이 11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늘었고 148억원의 흑자를 기록, 9개분기 만에 두자릿수 영업이익률(12.8%) 달성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급성장했던 진단 기업들이 '코로나 특수' 종료 이후 재고 누적, 고정비 증가 등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이제는 기술 고도화와 질환 다변화로 정밀의료 분야의 주역으로 전환하는 중"이라며 "진단 정확도, 접근성, 비용 효율성을 모두 잡는 키트 기반 진단이 향후 의료혁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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