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누구나 누리는 '사회적 공공재'
공연계 '명품 문화' 틀에서 벗어나야
다양한 가격 정책 등 근본적인 대책 절실
올여름 대형 뮤지컬 두 편이 공연계에 큰 반향을 예고하고 있다. '위키드'와 '위대한 개츠비'는 VIP석 가격을 19만원으로 책정하며 사실상 '티켓 20만원 시대'의 막을 열었다. 단순한 가격 인상을 넘어 '티켓플레이션(Ticket+Inflation)'이라 불리는 공연 티켓 가격 급등 현상은 공연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최근 몇 년간 대형 뮤지컬의 티켓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15만원을 넘었고, '오페라의 유령'과 '알라딘'은 19만원까지 치솟았다. 이제는 이러한 고가 티켓이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됐다. 제작진은 배우 출연료, 무대 제작비, 해외 라이선스 비용, 환율 상승 등 외부 요인을 주된 이유로 내세우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무엇보다 제작비 상승을 명분으로 티켓 가격을 무분별하게 올리는 관행은 관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문화는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할 사회적 공공재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공연을 일부 고소득층만 향유할 수 있는 사치품으로 만들고 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에 지친 시민들이 문화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접근성의 위기'다.
더 큰 문제는 업계 전반에 퍼진 '눈치 싸움'이다. 티켓 가격이 20만원을 넘지 않도록 맞췄다는 소문은 사실상 가격 담합에 가까우며 공연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화려한 마케팅 이면에는 관객 부담만 커지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공연의 장기 운영이 어려운 구조도 악순환을 부추긴다. 국내 대부분의 뮤지컬은 2~3개월 만에 막을 내리며 '오픈런(장기 공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작비를 단기간에 회수해야 하다 보니 티켓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다. 공연장 부족과 불합리한 임대 구조, 제도적 미비 등 구조적 한계 역시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통계에서도 이 같은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공연 티켓 가격의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가만큼 오르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가격 인상이 한계에 다다랐거나 관객 이탈을 우려해 '절제된 인상'에 그친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국 공연계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면서도, 동시에 관객 감소라는 딜레마에 직면한 셈이다.
이제 공연계는 '명품 문화'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형 무대와 첨단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객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공연 산업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 문화는 널리 향유돼야 하며, 관객 저변 확대 없이는 공연 시장의 미래도 없다.
공연장 확충, 공연 기간의 유연한 조정, 다양한 가격 정책 도입 등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연 인프라 구축과 제작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하며, 업계는 관객과 함께 가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관객이 외면하는 명품 공연은 더 이상 명품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공연계가 티켓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중문화로 거듭나야 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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