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무신사 등 한국 대표 유니콘 나스닥행 선언
적자 있어도 성장성 위주 평가 ‘밸류에이션 유리’
상장 문턱 낮추고 좀비기업 신속 퇴출 ‘선순환’
코스닥은 진입 어렵고 퇴출 느려 정반대
기술특례상장에도 ‘안전성 위주’ 깐깐한 심사
"유니콘 찾아오는 시장 되려면 대전환 필요"
25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증시에 상장한 한국 기업 수다. 이 중 5개 기업이 최근 4년(2021~2024년) 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시장에 입성했다. 직전 10년(2011~2020년) 통틀어 이 수치가 2개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상장 국내기업은 증가 추세다.
한국거래소가 성장성이 우수한 예비 유니콘 기업을 위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유니콘 특례(유가증권시장은 기업가치 1조원·코스닥은 5000억원 이상)'를 만들었지만 국내 예비 유니콘들은 모두 나스닥만 쳐다보고 있다. 현재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무신사, 야놀자 등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이 나스닥 시장행을 공언한 상태다. 컬리, 당근마켓, 오늘의집 등도 한때 나스닥 상장을 검토했었다.
연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국내 뇌 질환 신약 개발 바이오 기업 지엔티파마의 곽병주 대표는 "대규모 자금 확보가 용이하고 기업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코스닥이 아닌 나스닥 상장을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나스닥 "기술력만 갖고 오세요"
한국에서 나고 성장한 유니콘들이 잇달아 미국으로 향하는 이유는 창업자 입장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중시한다. 당장 매출이 낮거나 적자가 나는 기업이라도 기술력이나 성장 잠재력이 있으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 NYSE에 상장한 쿠팡은 상장 추진 당시 누적 적자가 4조5500억원에 달했지만 '아시아의 아마존'으로 불리며 50조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상장 문턱도 낮은 편이다. 나스닥은 기업 규모·특성에 따라 크게 3개 시장(글로벌셀렉트 마켓·글로벌 마켓·캐피털 마켓)으로 나뉘는데 이 중 중소·초기 성장기업을 위한 캐피털 마켓은 시가총액 5000만달러(약 700억원) 이상만 충족하면 상장이 가능하다. 실적이 부족한 스타트업, 테크, 바이오 기업 등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다. 네이버웹툰 북미 법인인 웹툰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6월 만년 적자 상태에서 나스닥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미국 주요 시장(NYSE·나스닥·아멕스 등) 상장에 성공한 기업의 매출 규모(상장일 직전 1년간)별 비중을 보면 1억달러(약 1400억원) 미만인 기업이 56.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억~10억달러인 기업이 26.4%로 뒤를 이었고 10억달러 이상 기업 비중은 16.7%로 가장 낮았다.
진입이 쉬운 대신 '좀비기업'은 신속하게 퇴출시킨다. 나스닥에서는 주가가 30일 연속 1달러 미만이면 경고를 받고 180일 내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다. 저성과·부실기업이 아닌 우량·성장기업에 더 많은 자금이 돌아가도록 해 자본 효율성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다. 2023년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된 종목은 총 796개로, 같은 해 신규 상장 종목(154개)보다 5배 이상 많았다. 나스닥 상장사 수도 2023~2024년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나스닥은 스타트업 성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금 조달, 밸류에이션, 시장 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서 스타트업이 국내에 머물 요인이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특례에 "매출 가져오라"는 코스닥
반면 코스닥시장은 진입이 까다롭다. 기술력이나 성장성을 입증하면 적자기업이라도 상장해주는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최근 허들이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술특례 기업 6곳이 예비심사를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2곳 더 늘었다.
2005년 시작된 이후 10년간 기술특례상장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바이오 벤처 업계에서는 코스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몇 달 전 기술력으로는 업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한 신약 개발 회사가 상장 철회를 하자 "매출 100억을 원하더라" 같은 소문이 돌았다. 바이오 벤처의 코스닥 투자 길이 막혔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VC도 신약 개발 벤처 투자를 확 줄였다. 한 바이오 벤처 대표는 "기술특례상장 덕분에 알테오젠 같은 글로벌 바이오 회사가 나올 수 있었다"며 "기술력이 글로벌 수준인 벤처가 많은데, 거래소가 과거 잘못된 사례 때문에 너무 안전하게 심사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퇴출은 더디다. 코스닥은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도 최대 2년의 개선 기간을 준다. 이의 신청, 심의 등의 절차까지 포함하면 실제 퇴출까지 수년이 걸리는 것이다. 부실기업 잔류로 상당한 자금이 시장에 묶이면서 투자 선순환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나스닥 제도를 그대로 베껴 주관사 주도로 쉽게 상장할 수 있는 코넥스 시장을 만들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지난해 코넥스 신규 상장 기업은 단 1곳뿐이었다. 전체 상장 기업 수는 121개로 2018년(153개)과 비교해 32개 줄었다. 시가총액도 같은 기간 6조2504억원에서 3조1038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코넥스 탄생 직후 몇 년 동안 제대로 성장한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주관사들이 상장에만 급급해 기업 옥석 가리기에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잦았다. 투자자들이 떠나자 결국 스타트업들이 코넥스를 기피하고 코스닥만 바라보는 상황이 됐다. 미우나 고우나 코스닥 시장이 나스닥처럼 활성화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스닥 시장이 유니콘 기업들에 외면받는 데는 밸류에이션 저평가, 기관투자가 참여 저조 등의 문제가 크다"며 "기업이 찾아올 만한 시장이 되려면 단순히 상장 요건 등을 고치는 '마이너'한 제도 개선을 넘어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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