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서울 중랑서 여성청소년과 이승재 순경
"처벌도 중요하지만 내재된 갈등 풀어내야"
"처벌보다 사후 관리에 신경 써서 보복 범죄를 방지해야 합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여청과)에 근무하는 이승재 순경(33)의 말이다. 그의 일은 단순히 범죄자를 잡아서 법의 판결을 받게 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여청과에서 수사하는 사건은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같은 일이 많기 때문에 처벌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순경을 이를 '관계성'이 있는 범죄라고 표현한다. 그는 "관계성 범죄는 서로의 주소와 이름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에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 이후에도 피해자 보호해야
이 순경은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 있고, 남편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면 이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사실상 벌금도 같이 낸다고 생각한다"며 "그로 인해 또 다른 다툼이 생기고 신고한 아내에 대한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여청과에선 사건을 송치할 때 가정보호사건 의견으로 송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처벌보다는 가정의 유지를 더 생각한 조치다. 이외에도 법원에 임시조치나 잠정조치를 청구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스마트워치 제공 등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순경의 업무는 그가 처음 생각했던 경찰의 업무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범죄도시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경찰의 강한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경찰이 됐다. 하지만 실제로 경찰로 일해 보면서 그 강함의 기준이 달라졌다. 그는 "현장에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함이라는 것이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며 "무작정 대상자들을 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을 잘 준수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곁들일 때 진정한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가족 간 폭행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오해였다는 사실을 파악한 적이 있었다. 이 순경은 조사 과정에서 가족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어줬다. 이후 이 순경은 경찰 내 '회복적 대화모임'이란 프로그램에 이들을 보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는 "가족들이 대화하면서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펑펑 울고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며 "서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약속 이행문을 썼고, 결국 불송치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의 입장에선 처벌, 교육 처분만 내려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내재된 갈등을 푸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총학생회장, 자영업자, 학원 직원…경찰이 되기까지
이 순경은 경찰이 되기 전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대형학원 교무팀에서도 근무했었다. 이 직업들을 뒤로 하고 경찰이 된 건 자신이 영리를 추구하는 곳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음식점이든 학원이든 돈을 벌어야 하므로 고객을 우선해야 하고, 영리를 위해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경찰은 법의 틀 안에서라면 경찰관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음식점과 학원에서 일하면서 뭔가 뿌듯함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세 번째 직업인 경찰관이 현재까지 가장 만족스러운 직업이고, 성취감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총학생회장까지 맡아봤던 이 순경이 꼽은 경찰로서 자신의 강점은 포용력이다. 그는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봤다"며 "여러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협업해본 경험을 통해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강점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이 순경에겐 아직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다. 과학수사와 교육이다. 이 순경은 무언가 한 가지에 빠져들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기 때문에 과학수사부서에서 현장에 남은 증거를 찾는데 몰두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는 "지금 부서에서도 아직 배울 게 많지만, 다른 부서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과학수사 업무를 꼭 해보고 싶다"며 "해당 부서에 가기 위한 공부와 필요한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랑구 지키는 토박이 경찰
이 순경은 중랑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근무지를 지망할 때 고향인 중랑구를 선택했는데, 중앙경찰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덕에 중랑구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는 "중랑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나고 여태까지 거주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지역의 특성과 지리를 더 잘 알면 업무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순경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중랑구에 있는 가정에 출동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순경은 "아무래도 주거지역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런지 신고나 사건이 많은 것 같다"며 "한 건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가정에 평화가 찾아와서 사건이 한 건도 없는 날이 찾아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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