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단위, 인구감소 농촌형 빈집 양산
정부·지자체, 리모델링 활용에 방점
인프라 없는 주거 개선, 인구 유입 한계
사후 관리 중심 대책, 빈집 예방 한계
지난 15일, 경기도 연천군의 농촌 마을 '백의2리'에서 만난 이장 윤영기씨(63)가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가 나고 자란 백의리는 서울 중심지인 종로구보다 북한 개성시가 더 가까운 접경지다. 현재 이곳에는 빈집 13가구가 있다. 군부대 아파트 주민을 제외한 마을 인구가 300명 남짓인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다. 연천군은 이곳을 빈집밀집구역으로 지정했다.
윤씨의 기억 속 백의리는 생기가 넘쳐나던 마을이었다. 한국전쟁 후 미군기지가 있던 기지촌이었다. 1970년대 미군 부대가 이전했지만 한국군의 특공연대가 둥지를 틀며 상권을 지탱했다. 1980년대 들어 지역경제가 번성하자 서울 마장동에서 백의리까지 오가는 직행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마을을 오갔다. 그러나 군부대가 마을을 떠난 것을 계기로 상권이 급속히 위축됐다. 생계가 막막해진 마을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심지로 떠났다. 남겨진 주민들마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빈집이 늘어났다.
마을의 유일했던 슈퍼마켓도 빈집으로 전락했다. 마을에는 깨진 담벼락과 벽돌이 나뒹굴었다. 슬럼화되는 마을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윤씨가 군청에 빈집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군청은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철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빈집을 상속받은 자녀들은 해외로 이민을 떠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씨는 번성했던 백의리가 쇠퇴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애가 탄다. 그는 백의리에 "빈집과 앞으로 비어갈 집들이 너무 많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최근 백의리를 비롯한 한국의 군 단위 지역에는 '빈집 섬'이 생겨나고 있다. 도시의 쇠퇴와 인구 감소에 따른 빈집들이다. 이는 도시개발 실패로 발생하는 도심의 빈집과는 다르다.
마을호텔·워케이션…리모델링 방점 둔 빈집대책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관은 최근 이러한 빈집에 대해 철거와 리모델링 중심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활용이 어려운 빈집은 철거를 하고 상태가 양호한 빈집은 예산을 투입해 호텔 또는 임대 주택으로 개량한 뒤 인구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연천군청도 2022년 예산 32억원을 투입해 백의마을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등을 준공했다. 현재 이곳은 백의리 마을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이 관리하고 있다.
정부 기관도 농어촌 지역들의 빈집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농촌 지역 빈집을 관할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농촌 빈집 재생지원사업'을 새롭게 공모했다. 지자체 3곳을 선정해 빈집을 주거, 문화 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지에 선정된 전남 강진군과 경북 청도군, 경남 남해군 등 3곳에는 3년간 각 지구당 총 21억원을 지원한다.
해양수산부도 올해부터 리모델링에 중점을 둔 어촌 빈집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빈집을 공동생활주택 또는 마을 쉼터로 개량하는 방식이다.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완도군과 남해군 내 빈집 6가구에는 농어촌협력기금 5억원이 사업비로 투입된다.
인프라 없는 마을…빈집 개량, 인구 유입 효과 한계
그러나 농촌 주민들은 리모델링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프라 확충 없이 단순히 공간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인구를 붙잡아둘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백의리 주민들은 게스트하우스를 개소한 뒤에도 눈에 띄는 관광객 유입을 체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백의마을협동조합 관계자는 마을 인근에 관광지가 없다 보니 휴가철에만 손님이 잠깐 몰리다가 다시 또 한적해진다"며 "인근 군부대 장병을 면회하러 온 부모들이 사실상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교회를 운영 중인 박상우 목사(49)도 "빈집을 새집으로 만든다고 해도 청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 마을에 정착할 리가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사후약방문식의 대처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빈집 발생을 예방하기보다 철거와 활용 등 사후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일자리 연계가 빠진 빈집 개량은 반쪽짜리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열악한 농어촌 지역에 단순 빈집 리모델링을 통해 청년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은퇴를 앞두고 귀향을 추진하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빈집을 공급하며 지역의 소규모 일자리를 동시에 연계하는 대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어촌 빈집, 사후 관리 그쳐…예방책부터 논의해야
한국보다 먼저 빈집 문제를 겪은 일본은 '빈집 예비군(집)'을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도쿄 세타가야구의 경우 구청 직원이 독거노인 가구를 중심으로 빈집 예비군을 선정한 뒤 수시로 방문해 처분을 상담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빈집 예방에 힘쓰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특정빈집(안전·범죄 우려가 높은 빈집)이 될 가능성이 높은 주택을 '관리부전 빈집'으로 지정하고 있다. 1년간 잡초 또는 해충이 관리되지 않거나 폐기물이 방치되는 집들이 대상이 된다. 관리부전 빈집으로 지정될 시 소유자는 지자체 권고에 따라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산세가 증액되거나 50만엔(약 48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장남종 서울시립대 공학박사는 "빈집 정책은 사후 조치만큼이나 예방이 중요하다"며 "공공에서 노인 1인 가구 등 향후 빈집 가능성이 높은 곳들을 파악해 역모기지 연계 또는 상속, 매각 상담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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