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크기보다 중요한 건 현금흐름
시퀀스·건강·장수 리스크 살펴봐야
주택연금 등 다양한 제도 활용 필요
"현시점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서 어느 정도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필자가 은퇴 관련 세미나나 강연회에 참석할 때마다 건네는 얘기이다. 최소한 퇴직을 5년 전후 앞둔 시점에서는 현금흐름 중심의 자산 재평가를 해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해 본 사람을 거의 만나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자산의 크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효과적인 은퇴 설계를 위해서는 먼저 자산의 크기 중심에서 현금흐름 중심으로 운용의 프레임을 재조정해야 한다. 직장인의 경우 인적 자본의 가치는 퇴직과 동시에 급격히 하락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급여를 통해 현금흐름을 조달할 수 있다. 퇴직은 기존 현금흐름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서 급여를 받아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더라도 과거 주된 일자리에서 만큼의 급여는 받기 어렵다. 기존 자산과 보유한 연금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현금흐름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변동성 리스크에 더해 장수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급여가 나올 때는 투자 자산의 변동성만 관리하면 됐지만 퇴직 이후의 삶에는 장수 리스크가 추가된다. 장수 리스크는 두 가지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하나는 죽음의 시점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당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노후 생활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20여년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노인들은 초기에는 죽는 것을 걱정했지만 나이가 더 들고 나서는 오래 사는 것을 걱정한다. 오래 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현금흐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은퇴 파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퀀스 리스크도 생각해야 한다. 시퀀스(sequence)의 사전적 의미는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 행동'이다. 시퀀스 리스크란 수익률의 순서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시퀀스 리스크가 발생하는 이유는 퇴직 이후에는 보유 자산에서 돈을 인출해서 생활비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동일한 수익률이라고 하더라도 '인출'이라는 현금흐름(현금유출)이 발생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퇴직 후 10년간의 수익률이 특히 중요하다. 여러 연구와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퇴직 후 첫 10년 동안의 수익률이 전체 30년 기간의 현금흐름을 결정한다고 한다. 은퇴 초기에 수익률 관리에 실패하면, 향후 30년간 애를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건강 문제도 중요하다. 평생 쓰는 의료비의 50% 이상을 75세 이후(후기 고령기)에 사용한다. 의료비가 충분치 않으면, 노년의 현금흐름을 극히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험을 잘 활용하거나 어느 정도의 의료비를 포함한 현금흐름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리스크는 고령화 시대에 누구나 맞닥뜨려야 하는 것들이다. 여러 제도도 국민들이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주택연금과 같은 좋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자본 시장에서는 배당소득 분리 과세 논의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퇴직연금은 연금으로 수령 시 30~40%의 절세 효과가 있다. 장기적으로 이런 인센티브들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은퇴 파산에 내몰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복지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어쩌면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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