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신도시 풍경이라 하기 어려웠다. 외식하러 나선 가족이나 커피 한잔하러 나온 커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텅 빈 상가 건물에 "임대"라는 글자를 크게 내건 공인중개소만이 눈에 띄었다.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 내 상업지역의 풍경은 한가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요즘 상가 10곳 중 1곳은 공실이라는데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아마존 효과가 상가 시장에 '돈맥경화(자금경색)'를 일으켰다. 아마존 효과는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과 같이, 거대한 플랫폼이 출연하면 경쟁이 심화해 물가가 내려간다는 현상이다. 경쟁은 물가를 낮출지 모르지만, 경쟁에서 패한 오프라인 상점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수익을 챙기기 어려우니 장사를 해 보려는 이들도 사라지게 된다.
상가 한쪽을 지켰던 공인중개소도 위태로워 보인다. 개업한 중개사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올해 봄 이사철을 앞둔 1~3월 월별 신규 개업 공인중개사 수는 1000명을 밑돌았다. 1분기 내내 월간 개업자가 1000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공인중개사 수는 2023년 2월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 사이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한 직거래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직거래 플랫폼인 '당근 부동산'의 직거래 성사 건수는 2021년 268건에서 2023년 2만3178건으로 크게 뛰었다. 지난해는 5만9451건이 거래됐다. 3년간 221배 이상 늘었다.
집값이 오르면서 중개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온라인 플랫폼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1분기 서울에서 소위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전용면적 84㎡의 평균 매매가가 14억6000원으로 추산된다. 이럴 경우 중개수수료(12억~15억원·상한요율 0.6%)는 876만원 정도가 나온다.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대출을 한도까지 받아) 집을 사는 것이 요즘 추세다. 그런데 집 한 번 보여준 비용으로 수백만 원을 내야 하니 직거래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수수료 몇 푼 아끼려다가 사기당한다고 걱정하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수수료의 수준은 푼돈이라 할 수 없다.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 출장 중개사를 부르거나, 전문 지식을 갖춰 거래하는 것이 요즘 세대들의 거래 방법이기도 하다. 멀리 보면 인공지능(AI)의 발전에 따른 혜택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이처럼 어느 면에서 봐도 공인중개업계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부동산 매물을 보러 가는 '임장(현장 방문)' 활동에 비용을 청구하는 '임장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김종호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은 지난달 23일 취임하며 "공인중개사는 단순 안내자가 아니다"며 "임장 과정의 노력과 서비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은 중개사 없이 거래하는 세상을 꿈꾸는데, 중개사들은 매물 본 비용까지 내라고 나선 꼴이다. 벌써 반대 여론이 거세다. '중개 수수료나 낮춰라'고 지적한다. 임장비를 받게 되면 직거래와의 경쟁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비용·편익에 민감한 소비자를 더 자극해 아마존 효과만 부추기게 된다. 중개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다. 전문성을 높이고 신뢰를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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