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차기 정부로 결정권 이관"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협의 방안을 논의한 첫 번째 공식협의인 '한미 2+2 통상 협의'를 통해 한국 정부는 차기 정부에서 최종 합의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미국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점인 7월 8일까지 도출하기로 한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를 차기 한국정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한 달의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최종 결정은 차기 정부에서 하게 되는 셈이다.
25일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협의는 예상대로 미국의 요구를 잘 듣고 한국의 입장을 잘 설명하며 협의 과제를 좁히고 후속 협의 일정을 도출한 데 의미가 있다"며 "한국은 차기 정부가 줄라이 패키지를 위해 본격적인 협상을 할 시간과 기반을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 회의실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부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2+2 통상 협의'에 참석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에서 정부는 미국 측에 상호관세는 물론 자동차·철강 등 핵심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공식 요청했다. 다만 이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하는 대신 향후 논의 대상과 일정에 대한 합의의 틀을 도출했다.
최 부총리는 한미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을 통해 "한미 협의의 출발점인 오늘 2+2회의를 통해 협의 과제를 좁히고 논의 일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협의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며 "상호 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줄라이 패키지를 마련할 것과 양측의 관심사인 관세와 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환율(통화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해 나가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번 협의 결과에 대해 산업계 안팎에서는 '결정권 이관'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 일정상 임기 말기에 접어든 현 정부가 중대한 통상 결정을 단독으로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협상의 구조와 프레임만 정리한 뒤 실질적 합의는 차기 정부로 넘기려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미 양국의 민감한 이슈는 방위비 분담금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은 다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도 "미국 측에 한국의 대선 등 정치 일정들을 고려해서 한미 논의가 앞으로 이뤄져야 되겠다고 얘기했다"며 "미국 측도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줄라이 패키지'라는 명칭도 표면적으론 '유예 종료 이전에 협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정권의 명분과 국회와의 조율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려는 구조다. 다행히 한국 차기 정부 출범 시기인 6월초와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까지는 한 달 정도가 있어 차기 정부가 미국과 합의할 시간도 충분하다. 현 정부는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최대한 협상 기반을 다져두되, 결단은 차기 정권이 하도록 설계한 셈이다. 미국 역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유보했다. 한국의 대선 결과와 차기 정부의 통상 기조를 살피며 대응 폭을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협의가 단순한 '이관'에 그치지는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현 정부 역시 단기적인 시간 벌기에 머물기보다는 실질적인 국익을 고려한 준비 작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근 부과한 관세 철폐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국 측에 반복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만큼, 향후 협상에서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진전을 끌어낼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일부 양보를 포함한 '교환 카드'가 줄라이 패키지에 주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처럼 미국이 전략적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협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의 관세 철회를 유도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조선협력과 한국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 LNG 수입확대 등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내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강 교수는 "최종 협상은 7월로 미뤄놨지만, 이전에도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한 자동차 등의 관세를 낮춰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관세 조치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지적한 한국의 비관세 장벽 관련해 일부라도 해소하고, LNG 수입 확대와 한국기업의 투자 노력 등은 현 정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특히 일본, 대만, 유럽연합(EU) 등의 대응 양상도 참고하면서 유리한 조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은 단순한 '피해 최소화'가 아니라 '주도적 대응'을 위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자동차 부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해 상호적으로 관세를 면제하자는 협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양측 모두 이익을 주고받는 구조로 협상하겠다는 의미"라며 "대선 이후 장관 등 고위직은 바뀌겠지만, 통상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기 때문에 지금 큰 방향만 잘 제시해 둔다면 한미 협상의 연속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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