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 내달 '에너지 脫러시아' 로드맵 발표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 탈피
美, LNG 수입 확대 위한 밑작업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화석연료의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조치인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구해 온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대미 관세협상 카드로 삼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4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에너지 안보의 미래를 위한 정상회의 연설에서 "2주 안에 모든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담은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는 에너지 수요를 적대적 국가(러시아)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로드맵은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음 달 6일 공개가 유력시된다. EU는 로드맵 발표 후 회원국과 관련 기업들과 논의를 거쳐 입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며, 법안이 추진되면 유럽의회와 회원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EU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45%, 석탄의 50%, 석유의 3분의 1가량을 러시아산에 의존했다. 현재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이 18%, 석유 의존도는 전쟁 전의 10분의 1로 줄었다. 석탄은 아예 수입되지 않는다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전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EU가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리파워 EU(REPowerEU) 정책을 추진하고 공급처를 다각화한 데 따른 것이다. 러·우 전쟁 여파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한파까지 겹치면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한때 1㎿h당 49.6유로(약 7만5000원)까지 올랐다. 이는 2022년 러·우 전쟁이 촉발해 발생한 유럽 에너지 위기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이 미국이다. 현재 유럽에 가장 많은 LNG를 공급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EU가 수입한 LNG 가운데 미국산 비중은 2020년 23%에서 2023년에는 47%까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천연가스 업계로서는 대규모 물량과 높은 가격을 보장하는 노다지였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은 카타르와 호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LNG 수출국이 됐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가스 공급과 관련해 "(에너지) 위기 당시 미국이 즉각 LNG를 제공했고 노르웨이는 가스관을 통해 추가로 공급했다"고 했다. 또 "일본, 한국처럼 더 멀리 있는 나라가 우리의 즉각적인 에너지 안보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산 LNG 수입을 포함한 에너지 파트너십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언급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EU에 LNG 수입 확대를 요구한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EU는 미국과의 무역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도 진행 중이며, 대미 관세협상에서도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산 에너지를 더 많이 구매해야 관세 부과를 피할 수 있다고 지속해서 압박해 왔다.
일각에선 러시아산 에너지 수요를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돌리는 EU의 조치가 실제 작동될지는 물음표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EU가 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LNG를 구매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들이며 일부 EU 국가들은 이미 자국 기업들이 가능한 한 많은 양의 미국산 LNG를 수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EU가 로드맵을 내놓아도 실제 이행 여부는 개별 국가와 기업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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