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대기성 자금 '요구불예금' 통상 5조~20조원 증감
보름 새 42조원 이탈 이례적
국내증시 및 해외주식으로 흘러들어가
은행 저원가성 예금 확보 어려워 대출 금리 자극 우려도
시중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요구불예금이 보름 새 42조원 넘게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한 달 새 5조~10조원 수준의 증감이 있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이례적인 변동이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면서 투자처로서 예·적금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는 데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으로 주식 등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의 합산 요구불예금(MMDA 포함·18일 기준)은 607조301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650조1241억원) 대비 42조8230억원 줄어든 규모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0.1% 수준으로 미미해 은행 입장에서는 저원가성 예금확보의 주된 통로이자,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통상 요구불예금은 한 달 새 적게는 5조 많게는 20조원 규모로 증감이 있지만, 보름 새 42조원이 넘는 규모의 변동은 이례적이다.
보름 새 요구불예금이 대거 빠져나간 데는 트럼프발 관세 충격으로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저점매수에 나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9일까지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약 37억달러(한화 5조2528억원)에 달한다. 이는 3월 순매수액(41억달러)의 약 90% 규모이자, 2월 순매수액(30억달러)을 뛰어넘는 규모다. 국내 증시에서도 순매수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5조5818억원 규모의 순매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에서만 3조원 이상 순매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면서 예·적금 금리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 점도 요구불예금의 이탈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의 12개월 만기 예금금리(단리 기준) 상·하단은 2.15~2.73% 수준이다. 전월 취급 평균 금리(2.61~2.94%)보다 상·하단이 각각 0.46%포인트, 0.21%포인트 내려왔다. 이미 1개월 만기 초단기 정기예금 금리는 1%대로 내려왔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과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은 1개월 기준 1.80% 수준이다.
단기간에 요구불예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은행의 대출 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요구불예금이 많을수록 은행의 대출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들어서다. 요구불예금이 큰 규모로 이탈하면서 은행의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등 변동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픽스는 은행이 취급한 예·적금 및 은행채 등 수신 상품 금리에 변동이 있을 경우 이를 반영해 움직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통상 분기 결산 시점인 3월에는 기업들이 결산을 위해 자금을 일시적으로 요구불예금에 유입시키는 등 계절적 요인으로 3월에는 요구불예금이 늘었다가 4월에는 다소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고는 한다"면서도 "다만 이러한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요구불예금을 비롯해 가계신용대출 등도 늘어난 점을 보면 은행 외 다른 투자처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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