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민원지역 금천구 말미사거리 가보니
비둘기 떼 수백마리 '우글우글'
"총각, 거기 있으면 비둘기 똥 맞을 건데…."
24일 오후 4시 서울 금천구 말미사거리 우시장 인근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기자에게 옆 벤치에 앉아 있던 한 70대 주민이 말을 걸어왔다. 바로 위 전깃줄과 전봇대를 보니 수백마리의 비둘기가 모여 있었다.
독산동 주민 김현재씨(29)는 "올해 초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무심코 있다 비둘기 똥을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요즘엔 일부러 반대편 인도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중년 여성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먹이 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손 쓸 방도가 없다"고 했다. 금천구청은 말미사거리 인근 전깃줄·전봇대에 150~200여마리의 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늘어난 도심 비둘기떼로 인해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둘기 개체 수 증가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히 막을 방법이 없어 시민 피해와 민원이 잇따른다.
서울시에 따르면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20년 667건에서 지난해 1481건으로 4년 사이 2배 넘게 증가했다. 주요 민원 내용은 배설물 및 털 날림, 건물 및 자동차 외관 손상 등이다.
올해 들어서는 강남구 개포동 일대에서 비둘기 떼로 배설물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늘어났다. 한 민원인 차량 앞 유리에는 흰색,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 등으로 섞인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했다. 서초구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서초초등학교 인근 인도에는 비둘기 수십마리가 항상 회식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서초동 주민 박모씨(47)는 "이곳을 지나가다 보면 곡물 등 새 모이 흔적이 있다"며 "누군가가 날마다 비둘기 밥을 주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원 해결을 위해선 비둘기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 잡아서 없애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포획을 하더라도 먹이 공급이 지속되면 개체 수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어 소용없는 일이 된다. 또 동물단체 등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포획보다는 조류가 모이지 못하게 하는 기피제 약물 등을 뿌리는 방법이 있지만 높은 곳에 작업을 해야 해 위험하고 큰 효과도 없었다"고 했다.
비둘기 떼가 남기고 간 배설물은 도심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비둘기 배설물에는 산성 물질인 요산이 함유돼 있어 금속·석재 등 도시 구조물을 부식시킬 수 있다. 2023년 부산 동래구의 육교 외장재에 비둘기 배설물이 쌓여 10㎏ 철판이 인도 아래로 떨어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한 비둘기 배설물엔 살모넬라균, 크립토코쿠스균 등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병원균을 포함하고 있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포동 주민 이모씨는 "아파트와 양재천 주변을 산책할 때마다 비둘기를 겁내는 아내가 기겁하듯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며 "아예 비둘기 없는 쪽으로만 다닌다"고 했다.
서울시는 오는 7월부터 서울숲, 한강공원 등 총 38곳을 유해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적발될때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금천구도 상습 민원 지역인 말미사거리 등을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방침은 지난해 1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지자체장이 조례로 유해야생동물 먹이 주기를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단속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결국 중요한 건 시민들의 의식 변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비둘기가 많이 몰리는 곳에 먹이를 주지 말라는 입간판을 설치하는 등 홍보활동을 꾸준히 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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