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택 '개인전 '겹 회화:거의 푸르른'
학고재서 5월17일까지
색을 통해 존재와 인식의 본질 탐구
작업실 바닥에 어른 키만 한 대형 캔버스가 놓여있다. 그 위로 물감을 고르게 입힐 수 있도록 특수제작된 기구에 붓이 달려있다. 써레처럼 캔버스 끝에서 한 번에 붓을 당겨 물감을 입힌다. 아크릴 물감과 특수 미디엄을 혼합한 안료를 수십 번 덧칠한다. 물감이 덩어리지지 않도록 과감하게 붓을 당겨 통일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칠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물감을 수십 번 덧입힌다. 새로운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실수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한다. 배색 결과를 어림짐작하지만, 서로 다른 색들이 반응하며 예상치 못한 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작업 끝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서울 종로의 학고재 갤러리에서 선보인 장승택 작가의 개인전 '겹 회화 : 거의 푸르른'은 위 작업을 통해 탄생한 20여점의 회화작으로 구성됐다. 색채의 물질성과 깊이를 탐구해 색면 회화의 개념을 확장해온 장승택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푸른빛에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담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삶 대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작가는 나이가 60대 중반이 되면서 부쩍 '소멸'을 생각하게 됐고, 그런 우울감을 푸른빛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죽음의 찰나에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지나간다고 하더라. 색채가 ㄱ런 모멘트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삶이 순간의 감정들을 쌓은 결과물이듯, 희로애락을 색으로 캐치(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의 파노라마의 한 부분을 캔버스에 찍어낸 듯 보이기도 하다. 여러 겹의 색층에서 엿보이는 시간의 흔적은 보는 이에게 각기 다른 기억을 소환한다.
작가는 푸른빛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뿐 단색화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며 일각에서 표현하는 '단색화 작가'란 수식어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내비쳤다. 장승택은 1959년 경기도 고양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의 작품은 학고재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5월17일부터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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