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시공·안전 불감증 등
강진이 드러낸 구조적 취약성
질적 변화 앞둔 동남아 시장

3월 28일 발생한 규모 7.7의 지진으로 미얀마 전역의 건물은 무너지고 34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얀마 만달레이 외곽 인 와(Inn Wa)에 있는 파괴된 불교 사원의 모습. AFP 연합뉴스
2025년 3월28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이 사건은 동남아시아 전역의 취약한 인프라 현실을 알림과 동시에 건설 산업의 방향성을 되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만달레이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인도, 동남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한때 버마 왕조의 천년 수도였으며 찬란한 불교 유적을 품은 도시로 유명하다. 이번 대지진으로 수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약 120만명에 달하는 만달레이 주민의 삶의 터전 대부분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도시주택개발부에 따르면 붕괴한 건물의 상당수가 내진 설계를 충족하지 못했다. 동남아 특유의 저비용 시공과 안전의식 결여가 만든 참사다.
이같은 부실한 사회 인프라는 오랜 군부 독재와 후진적 경제체제가 낳은 미얀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콕, 마닐라, 자카르타 역시 지질 구조가 불안정하고 건축 규정도 일관성이 부족해 이런 참사는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다. 물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같은 모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서 건설 안전의 구조적 취약성은 향후 아세안 모든 국가가 넘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취약한 동남아 건설 인프라
언론 보도가 제한된 미얀마와 달리, 진앙에서 1000㎞ 떨어진 국제도시 방콕에서는 충격이 더 부각됐다. 특히 방콕 도심에서 'China Railway No.10'이 시공하던 감사원 건물(33층)이 완전히 붕괴해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태국 철강협회에 따르면 건설에 사용된 'Sky' 브랜드 철근은 인장 강도와 화학 성분 모두 기준을 밑돌았다. 중국계 자재의 품질 부적합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태국 정부는 고층 건물의 안전 기준을 전면 재검토 중이다.
반면 다른 고층 건물들은 대부분 큰 피해 없이 견뎠다. 감사원 빌딩의 붕괴와 대비되어 특히 시민들의 주목을 받은 건물은 방콕 사톤 지역의 '사톤 유니크 타워'다. 1990년대 초반 착공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사태로 49층까지만 골조 시공이 진행되다 중단된 미완성 건물이다. 그런데도 이번 지진에서도 커다란 흔들림 없이 버틴 것이다. 과거 이 건물의 뼈대를 만든 시공사는 다름 아닌 한국의 삼성물산이다.
이 사례는 한국 건설 기술의 내구성과 품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한국의 동남아 건설 진출 역사는 오래됐다. 1966년 현대건설은 태국 남부 파타니와 나리타왓을 연결하는 98㎞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우리나라 건설업체로서는 최초로 해외 시장에 발을 디뎠다.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현지에서 '나리타왓 고속도로'는 한국 토목 기술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이후 한국 기업들은 싱가포르 MRT,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마리나베이샌즈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품질, 기술, 성실 시공으로 신뢰를 쌓았다. 특히 삼성물산이 시공한 페트로나스 타워, 쌍용건설이 주도한 마리나베이샌즈, 그리고 GS건설이 만든 싱가포르 지하철 시공 경험은 동남아에서 한국 기술력의 깊이와 진정성을 입증한다.
동남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건설 시장 중 하나다. 자카르타의 스카이라인은 크레인과 잭해머 소리로 가득하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도시화와 함께 수십억 달러 규모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30년까지 이 지역에 약 2조달러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질적 변화, 동남아 건설 시장
이 거대한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BRI)를 통해 값싼 인력과 국가 금융을 앞세워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내진 설계, 스마트 기술, 친환경 시공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유럽은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 분야에서 조용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 지하철 건설은 이런 경쟁의 단면이다. 일본 자금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한국과 중국도 참여해 기술력과 가격경쟁이 동시에 벌어졌다. 하노이의 도시계획 전문가 응우옌 반 투안은 "중국은 비용 효율성을, 한국과 일본은 품질과 유지보수 안정성에서 강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지진 이후 동남아 각국은 인프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다. 내진 설계, AI 기반 구조물 모니터링, 고강도 자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비교 우위를 지닌 영역이다.
미얀마의 재건 사업을 둘러싼 지정학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가장 먼저 긴급 원조와 재건 대출을 제시했다. 미얀마 군부와의 기존의 돈독한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력과 투명한 시공, ESG 기반의 지속 가능한 개발 전략으로 중장기 파트너십을 노려볼만한 시장이 될 수 있다. 이번 지진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본 태국 시장 진출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한국 건설을 원하는 프로젝트는 동남아에 무궁무진하다. 싱가포르의 풍골 디지털 지구, 인도네시아 누산타라 수도 프로젝트처럼 동남아 전역에서 '현대적, 안전한 도시' 모델이 부상 중이다. AI 교통 제어, 에너지 효율성, 수자원 관리 시스템이 도시 건설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이 여전히 최대 대출국이지만, 태국과 베트남 등은 일본·한국·EU와의 협력 비중을 점차 확대 중이다. 미국도 개발금융공사(DFC)를 앞세워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한국 건설 산업에 기회다. 단순 시공을 넘어 기술력, 철학, 그리고 신뢰를 갖춘 파트너로서, 동남아의 재건과 미래 도시화에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다.
2025년 미얀마 지진은 끔찍한 비극이면서도 동남아 전역의 안전의식과 행정 기준 나아가 건설산업이 재편되는 전환점으로 볼만하다. 부패와 연결된 값싼 시공을 계속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안전성을 택할 것인가.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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