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재추진 가능성에 기업들 촉각
예측 불가능 해소, 중장기적 정책 설계해야
지난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 이후 재계는 다가올 불확실성에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될 경우 과거 추진했던 반(反)경제 법안들을 다시 꺼내 들 것이란 우려에서다.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물밑에선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기업 국회 증언법 개정안 등 야당이 주도했던 주요 법안들의 부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업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상법 개정안이다. 현장에서 만난 재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 파면 직후 "상법 개정안은 결국 통과되겠네요"라는 반응을 먼저 보였다. 주식회사 이사가 특정 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경영계는 반대하고 있다. 앞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 민주당이 새 정부를 구성할 경우 법안이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은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는 상법 개정안에 그치지 않는다.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기업인의 국회 출석 요구를 강화한 기업 국회 증언법 개정안 등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들이 다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을 얻는다. 소액 주주 보호, 농민 생계 안정, 의회 견제 강화 등 명분은 있지만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이어서 일부 기업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다.
정치권에선 매일 투자와 고용,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려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수 조건이다. 재계가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직후부터 정권 교체를 걱정하는 건 단순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다. 정책 방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정권 교체가 있을 때마다 민간 부문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는 기업 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새 정부가 기존 정책을 무조건 계승할 필요는 없지만 정책 변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공약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장과 기업, 노동,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 설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재계가 원하는 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다. 정권 교체가 곧 규제 강화나 방향 전환을 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과 경제 전반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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