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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지켜야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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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의 법치주의 무시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법치주의 근본 되새겨야

[초동시각] 지켜야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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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이후 122일간 이어졌던 혼돈과 갈등의 상황이 일단락됐다. 최장기 심리 끝에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면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그 역할을 지혜롭게 수행했다. 그러나 탄핵정국을 거치는 동안 법치의 최선봉에 있는 행정부 수장이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되레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문제는 이 사건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라는 데 있다. 그간 행정부는 물론 국회와 사법부도 법과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의 위헌 결정이 2월27일 이후 40일 동안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헌재가 전원일치 의견으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행위는 국회의 선출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렸고, 한 대행 탄핵 사건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는 헌법재판소법 47조가 명시한 ‘기속력(羈束力)’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헌재 결정의 권위를 훼손한 것은 물론 헌법 해석과 헌재 결정의 다양성·안정성과 연계되는 9인 재판관 체제의 복원도 방해한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도 행정부작위로 인한 위헌·위법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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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턱에서 멈춰선 헌재 결정도 많다. 국회는 헌재가 ‘위헌이지만, 법적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약사법·집시법·국민투표법 등 18건에 대해 후속 입법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면서 2012년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낙태죄’ 관련 법률은 개정시한을 넘겨 표류 중이다. 2014년 국내거소신고가 돼 있는 재외국민에게만 국민투표권을 인정한 국민투표법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결정을 했음에도 국회는 2015년 입법 기한을 넘겼고, 9년째 개정에 나서지 않았다. 이른바 ‘입법부작위’이다. 여기에 이번 탄핵정국에선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심판이 기각 5인·각하 2인·인용 1인으로 기각됐음에도, 야권이 기각된 사건과 같은 이유로 한 대행에 대한 재탄핵을 운운하며 헌재의 결정을 흔들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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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법 무시 또한 심각하다. 법률의 엄정한 적용을 통해 공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관들마저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선거법의 명문 조항을 훈시규정으로 해석하는 자기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강행규정인 ‘6·3·3 원칙’을 준수하라"고 법관들에게 강조했지만, 법원행정처가 구체적 지침을 각급 법원에 내려야 할 정도로 현실은 딴 판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처리 기간 통계에 따르면 1심은 평균 288일, 2심은 평균 240일을 초과할 정도로 법정 기한이 형해화된 상태다. 법정 기한을 지키는 사례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로마 시대 법률가 키케로(Cicero)는 "법이 침묵하면 폭정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 계약은 무너진다"고 한 존 로크(John Locke)의 통찰도 있다. 법을 준수하는 것은 사회적 혼란과 폭정을 예방하는 길이다. 이번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우리 사회 모두가 법치란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을 통해 법치주의의 근본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법은 지켜야 하고, 지켜야 법이 된다.




임철영 사회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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