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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두 번째 파면 주문, 122일 '불면의 밤' 끝냈다 [윤석열 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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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이후 122일
탄핵소추 111일만에 파면결정
1월14일부터 11차례 변론…尹헌정사상 최초 직접 출석
사상 최장기간 평의로 혼란 가중
尹 석방 됐지만 반전은 없어

헌정사 두 번째 파면 주문, 122일 '불면의 밤' 끝냈다 [윤석열 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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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일간 대한민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12·3 비상계엄 발(發) 탄핵 파동은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귀결됐다. 2021년 검찰총장 출신 정치 신인에서 일약 야당의 대선후보로, 다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올랐던 윤 대통령은 임기를 3년도 못 채운 채 탄핵소추되고 결국 파면까지 되는 사상 두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12·3 비상계엄…대한민국 혼돈 속으로

지난해 12월3일 저녁 10시23분. 느닷없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 긴급담화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비상계엄 선포. 5분37초 동안 진행된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온 국민이 ‘꿈인가 생시인가’ 되뇌는 사이 방송사 생중계 화면에는 중무장을 한 채 헬기를 타고 내려온 특전사 대원들이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담화문 발표 직후 ‘계엄 포고령 1호’가 발동됐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등 6개항이다. ‘계엄법 14조(벌칙)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나절도 못 간 계엄

45년 만에 전격 선포된 전국 단위 비상계엄이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계엄령 발동 2시간 30여분 만인 12월4일 새벽 1시3분 비상계엄은 국회에 의해 해제됐다. 국회 본회의장에는 우여곡절 끝에 여야 의원 190명이 착석했고,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쳐 계엄을 해제한 것은 그로부터 3시간 27분이 지난 12월4일 새벽 4시30분이었다.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국회는 즉각 윤 대통령 탄핵 시도에 나섰다. 계엄 해제 사흘 뒤인 12월7일 첫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 그러나 이 상황도 오래 가지 않았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이 윤 대통령의 측근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불러주는 ‘체포 명단’을 받아적었다고 증언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일로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다. 결국 12월14일 두 번째 탄핵 표결에서 찬성 204표가 나왔다. 가결 직후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번호는 ‘2024헌나8’.


‘내란’ 수사와 윤 대통령 구속


탄핵안 의결과 동시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른바 ‘내란죄’ 수사다. 그런데 갑자기 공수처가 윤 대통령 수사에 뛰어들었다. 공수처법의 이첩 요구권을 활용해 검·경에 수사권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윤 대통령 측이 ‘수사권 없는 공수처의 불법 수사’라고 반발하며 소환에 불응하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는 보름 넘는 소동 끝에 해를 넘겨 2025년 1월15일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나흘 뒤인 19일 새벽엔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영장도 발부받았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침범해 파괴하는 초유의 일까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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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대통령, 탄핵심판서 ‘셀프 변호’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 탄핵사건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인 2025년 1월14일부터 본격적인 변론을 열었다. 설 연휴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두 번꼴로 변론이 11차례 열렸다. 구속 피의자가 된 윤 대통령은 3차 변론부터 2월25일 끝난 11차 변론까지 8차례나 탄핵심판 직접 출석을 위해 서울구치소와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을 오갔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변론 출석 증인은 16명. ‘비상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군인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다.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것은 ‘체포 명단’을 폭로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었다. 증인 가운데 유일하게 두 번 출석한 그는 끝까지 윤 대통령과 맞섰다.


尹 석방과 반전, 그러나…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고 헌법재판관들이 평의에 돌입한 와중에 ‘반전’이 일어났다. 최종변론 10일 만인 3월7일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결정과 8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으로 윤 대통령은 구속 52일 만에 석방됐다.


이를 계기로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의 대립이 더욱 격화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탄핵 반대에 가담하며 세를 결집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을 하지 않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헌재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기각 결정을 통해 한 총리를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시키고, 평의가 사상 최장기간인 38일이나 이어져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헌재 결정 지연과 윤 대통령 석방은 여론조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체로 탄핵 찬성이 10% 포인트 내려가고 반대는 그만큼 올라갔다. 윤 대통령을 수사한 공수처의 난맥상에 대한 비판 여론 역시 이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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