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우위였던 유도품 시장, 중국에 내줘
에틸렌 마진 적자 구조 지속…진퇴양난
구조조정 더뎌 위기 심화…자체 자구책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에틸렌 수출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틸렌은 폴리에틸렌 등 합성수지의 기초원료로, 상당수 물량이 내수에서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간 추이와 다르게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수출 증가는 일반적으로 우리 경제에 긍정적이지만 지난해 에틸렌 수출은 사정이 다르다. 기초유분 생산분이 합성수지 제조 등 다운스트림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탓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더불어 중국의 다운스트림 분야 공세가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에틸렌 수출 증가는 우리 석화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4일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에틸렌 수출 규모는 총 184만9000t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0년(84만8000t)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에틸렌 수출 증가는 국내 석화 산업 실적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며 각종 플라스틱, 고무, 섬유의 원료로 활용되는데 이들 유도품 생산이 줄었다. 특히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 에틸렌글리콜(EG), 스티렌모노머(SM) 등 에틸렌을 활용한 대표적인 유도품 6개 품목 수출은 5년 전과 비교해 5%가량 감소했다.
반면 에틸렌을 생산하는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은 유도품 생산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1.7%를 유지했다. 결국 남아도는 에틸렌은 수출을 통해 해외로 밀어낸 것이다.
중국에 다운스트림 뺏긴 한국
한국의 에틸렌 수출 물량이 중국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크다. 대(對)중국 에틸렌 수출 비율은 최근 5년간 전체 수출량 증감과 관계없이 꾸준히 80%대를 유지했다. 그간 한국은 원유를 나프타로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고, 이를 가공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해 마진율을 챙기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최근 제조기술 개선과 가격 경쟁력으로 중국이 가공제품 시장을 장악해가는 추세다.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석유화학 설비를 대폭 늘렸다. 에틸렌 자체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에틸렌을 들여와서 가공품을 생산하는 능력도 급성장했다. 중국 철강 매체 마이스틸에 따르면 기초유분을 만드는 업스트림 제품에서부터 폴리프로필렌(PP) 등 유도품(다운스트림)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자급률을 개선해 현재 10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수출한 에틸렌을 활용해 중국에서 합성수지를 만들면 국내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에서 더욱 밀리게 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받은 에틸렌으로 중국은 다운스트림 설비를 돌린다"며 "제품군 경쟁에 있어서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팔수록 손해…에틸렌 마진 '적자 구조'
에틸렌 판매도 수익을 남기지 못한다. 글로벌 공급 과잉이 이어지며 에틸렌 시장 가격은 1년 넘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생산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제외한 순수 마진을 의미하는 ‘에틸렌 스프레드’는 2020년 t당 351달러에서 2024년 170달러로 최저치를 찍고 2025년 3월 218달러로 일부 회복하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t당 250~300달러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적자가 난다고 해서 공장을 멈출 수도 없다. 장치 산업인 석유화학 공정 특성상 공장을 켜고 끄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든다. 공장 가동을 멈추는 최악의 상황 대신 적자가 나더라도 NCC 가동률을 80%대로 유지하는 게 그나마 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단기간에 해소될 기미가 없다. 특히 중국과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 생산설비를 앞다퉈 늘리며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에 접어들었다. 올해에는 ‘오만 두 프로젝트’, ‘아랍에미리트(UAE) 보루즈 4 프로젝트’, ‘사우디 얀부 프로젝트’ 등 산유국인 중동이 석유화학 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는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COTC)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2028년까지 에틸렌 등 석유화학 원료 글로벌 공급 과잉 규모는 6100t까지 늘 것으로 예측된다.
구조조정 더딘 한국, 버티기·감산·매각으로 '몸부림'
국내 석화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비롯해 원료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에 나섰던 LG화학, HD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에너지의 에탄 공동 프로젝트는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이들 3사는 지난해 말부터 충남 대산 산업단지에 에탄 터미널을 짓기 위해 협업해왔지만, 부대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28년 터미널 준공을 목표로 하면서도 아직 투자 조율조차 마치지 못했다. 에탄은 NCC보다 에틸렌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초원료다.
일부 기업들은 수익성 확보의 일환으로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LG화학은 충남 대산 석화단지에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PBAT) 공장과 전남 여수 SM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여수 2공장 일부 생산 라인을 멈췄다. 여천NCC는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기한이익상실(EOD) 위기를 겨우 면한 상태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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