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11)
지성원 현대차 브랜드마케팅 본부장
진보·혁신 브랜드 이미지 강조
'아재 이미지' 벗고 리브랜딩 성공
편견 깬 '팰리세이드xBTS' 마케팅 시도
과거에서 현재를 찾는 헤리티지 프로젝트
트렌디한 감각 유지 비결은…관찰과 경청
"요즘 현대차가 브랜드 마케팅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죠.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조직의 결실이 모여 꼬박 10년 넘게 걸렸어요."
지난달 25일 현대차 강남대로 사옥에서 만난 지성원 현대자동차 브랜드마케팅본부 전무는 이같이 말했다. 지 전무가 현대차에 합류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의 인식은 아빠 차, 가성비 좋은 차, 국산차 정도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를 조사하면 ‘첨단 기술이 탑재된 미래차’라는 답변이 가장 먼저 돌아온다. 10년 사이 품질 개선, 기술 향상과 더불어 브랜딩에 대한 꾸준한 고민과 대중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 결과다.
지 전무는 과거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이렇게 분석했다. 1970년대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차, 1980년대에는 가성비 좋은 대중차, 1990년대에는 품질에 사활을 건 글로벌 자동차의 이미지였다. 2010년 이후 현대차는 보다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전사적인 브랜드 마케팅 역량을 동원했다. 그는 "우리가 지향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인류를 향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비전을 통해 알 수 있다"며 "진보의 궁극적인 목적을 ‘사람’에 두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브랜드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들쑥날쑥’ 서체·색상부터 통일
우선 그는 대중과 소통하는 매개체의 일원화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지면·영상 광고에 활용하는 서체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유럽, 인도, 국내 등 각 지역본부 광고에 사용하는 서체가 모두 달랐다. 브랜드를 표현하는 색상도 같은 파란색이라 해도 뭔가 모르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이 같은 소통 방식의 도구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그가 집중했던 초기 과제다. 지 전무는 "과거엔 지역별 마케팅 소통의 원칙과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며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현대차가 공통된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같은 마음가짐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류를 향한 진보의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 캠페인 광고, 수소에너지와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알린 평창올림픽 홍보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을 표방한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18에서의 발표 등 연이은 브랜드 마케팅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현대차는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지 전무는 "잇따른 프로젝트에서 호평받았지만 초기에는 ‘현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며 "개인적으로는 매우 뼈아픈 피드백이었다"고 회고했다.
‘현대스럽지 않다’는 말은 ‘현대스럽다’는 개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현대차는 남성적이고 올드한, 가성비 좋은, 국민차의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지 전무를 비롯한 브랜드팀 구성원들은 인식의 틀을 깨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안된 프로젝트가 바로 2018년부터 4년간 지속된 방탄소년단(BTS)과의 협업이다.
팰리세이드와 BTS의 만남
현대차는 전형적인 패밀리카인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BTS를 낙점했다. LA오토쇼에서 진행된 신차 론칭 행사에서 BTS가 팰리세이드를 영상으로 소개하는 모습이 글로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이목을 끌었다. 2019년 그래미어워즈 시상식에 참여했을 당시 BTS가 팰리세이드를 타고 등장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기도 했다.
하지만 "BTS와 팰리세이드의 공통점은 7인(승)이라는 점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로 팰리세이드와 BTS의 조합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이에 대해 지 전무는 "‘가족’이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젊은이’의 이미지로 바꿔야 했기에 팰리세이드의 모델로 BTS를 선택했다"며 "모두가 예상하는 범주를 벗어나기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진정성’이었다. 지 전무는 "비싼 고급차를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BTS가 본인들이 캠페인 하는 대한민국 브랜드 차를 직접 타고 등장한다고 했을 때 그 진정성은 훨씬 더 파워풀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이 같은 측면에서 ‘아미(BTS의 팬클럽)’와 소속사 하이브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원해 줬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 소비층의 관심을 끌고 현대차의 이미지 개선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팰리세이드를 세계 무대에 노출하며 개별 차종을 홍보했을 뿐 아니라 수소에너지를 비롯한 탄소 중립 메시지, 지속가능한 개발의 중요성 등을 젊은 세대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과거에서 현재의 방향성을 찾다…헤리티지 프로젝트
그가 심혈을 기울인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현대차의 뿌리를 찾는 ‘헤리티지 프로젝트’다. 100년이 넘는 엔진 개발의 역사를 가진 자동차 업계에서 60년이 채 안 된 현대차는 신생 브랜드에 속한다. 하지만 전기차로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현대차는 전통 브랜드로 분류된다. 미국의 테슬라를 비롯해 중국의 BYD, 샤오펑, 니오 등 신생 전기차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현대차는 그들이 참고해야 할 또 하나의 롤모델이 됐다.
지 전무는 "시장의 주요 관심사가 전동화로 바뀌는 시점에선 벤치마크(기준)의 의미와 경계가 사라졌다"며 "전동화 시대에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동일 출발선상에 서면서 이제는 다른 업체를 보고 따라가야 할 시기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벤치마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1년 시작된 포니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2년이 걸렸다. 포니 개발의 숨겨진 뒷이야기부터 대한민국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한 포니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출간물 ‘리트레이스 시리즈’를 발간하고 별도의 전시회도 진행했다. 약 50년 전 기억의 조각을 서로 맞추고 자료를 모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철저한 고증을 거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프로젝트의 의미가 퇴색될 우려도 있었다. 지 전무는 "수십 명이 넘는 선배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 자리도 마련하며 옛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가 그동안 현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대외적으로 소통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찾아가며 구성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현대차가 글로벌 무대에서 첨단 모빌리티 기업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아재 브랜드, 저렴한 국산차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차가 단일 브랜드로서는 40%가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한 만큼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고 안티팬도 많다.
국내 시장 이미지에 대해 지 전무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웃으며 운을 뗐다. 부정적인 의견일지라도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브랜드를 위한 충고로 받아들인다고 언급했다. 또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가 국내 소비자들의 지적을 해명하는 데 바빴다면 이제는 건설적인 의견 제시로 수용하고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자세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브랜드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우리의 경쟁력을 충분히 입증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한국은 소비자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고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노출도가 높은 시장이다. 지 전무는 국내 마케팅의 관점에서 현대차의 경쟁사는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모든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13세 이상)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3%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그만큼 한국 시장에선 유행의 속도가 빠른 모바일 마케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 전무는 "하루 평균 대중들이 보고 넘기는 디지털 콘텐츠가 500여개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그 정도로 국내 시장은 모든 브랜드 간의 (마케팅) 싸움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브랜드 주도로 ‘우리가 만든 기획을 보세요’ 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이슈를 쫓아다니면서 그 속에 우리의 브랜드 콘텐츠를 녹여내야 하는 ‘찾아가는 마케팅’의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트렌디한 감각의 유지 비결은
지 전무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행동, 관심사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최근 어떤 브랜드가 유행하는지, 어떤 지역의 상권이 뜨는지, 지하철역 광고판에는 어떤 광고가 걸려 있는지 등 우리 주변의 트렌드를 파악한다. 유명한 전시는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반드시 찾아간다. 약속 장소도 일부러 성수동이나 한남, 이태원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잡는다.
지 전무는 "주말이나 먼 곳을 이동할 때는 반드시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입는 것, 보는 것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며 "제가 자주 접하는 브랜드는 개인의 취향일 수밖에 없기에 이를 넘어선 대중의 취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이 매우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케터로서 항상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팀원들의 도움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현대차 브랜드마케팅 본부 구성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전체 직원의 70% 이상이 20~30대 직원이다. 지 전무는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성사된 프로젝트가 바로 2024년 공개된 ‘밤낚시 프로젝트’다.
현대차 는 단편영화 밤낚시로 ‘스낵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장착된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10분 이내의 짧은 러닝타임, 1000원의 영화 관람료를 제시했다. 5주간 상영으로 4만6000여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 등 글로벌 무대에서 최고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2024년 대한민국 광고 대상에선 8개의 상을 휩쓸었다.
지 전무는 "항상 젊은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또한 이노션 등 외부 파트너의 생각을 경청하고 협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만약 저 혼자 아이디어를 냈다면 밤낚시 프로젝트처럼 기존의 포맷을 깨는 신선한 아이디어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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