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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정치]헌법재판관들에게 선고의 자유를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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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정치]헌법재판관들에게 선고의 자유를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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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인들과 경기도에서 등산하다가 지난 겨울 습설(濕雪·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눈)에 훼손된 나무들을 보았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숲속에는 인부들이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둘레가 얇으면서도 키가 큰 나무,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피해가 커 보였다. 문득 우리의 민주주의도 이와 유사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급성장했으나 취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그 성장통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한 번 내린 눈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처럼 우리 또한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역동적인 것은 아닐까, 상대의 몫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다 좌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미덥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믿고 기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특히 우리 정치를 보면 그렇다. 상대방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이제는 회의 석상에서 얼굴 붉히며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포퓰리즘 정치의 일상화, 갈등의 극단화로 가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도 일상이 됐다. 걸핏하면 고소·고발을 한다. 판결에 대해 법원을 비난한다.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경의를 표한다"고 칭찬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비상식적 판결"이라고 공격한다. 판사를 이념과 지역으로 분류해 색깔도 칠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여야 반응이 대표적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개인과 기관의 권위가 해체되면서 갈가리 분열하고 있다. 개인은 개인대로, 기관은 기관대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면서 '우리가 아닌 우리 편'을 챙기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국가의 위기이다. '권력의 원리'(줄리 바틸라나·티치아나 카시아로 지음, 로크미디어)를 읽다 보니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 콕 박혔다. "대통령으로서 나의 힘은 공유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힘이 분산돼 있다. 그래서 힘은 곧 타협이다."


정치권의 극단 투쟁은 검찰, 법원을 넘어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파면하라" "기각하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권이 나서서 "언제까지 선고하라"거나 헌법재판관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특정 재판관의 집 앞에서 시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퇴진 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서 특정 재판관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라고 외쳤다.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정치권은 절제하며 헌재의 선고를 기다리는 게 옳다. 재판관들에게 선고의 자유를 줘라. 믿고 기다려라.


일각에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까지 탄핵심판 선고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그런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소는 존재 이유를 의심받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아노미 상태로 갈 것이다. 재판관들은 광장의 열기를 넘어 오직 헌법과 국민만 바라보고 18일 이전에 선고해야 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재판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다.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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