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각자의 판단을 존중할 것”이라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얼마 전 입장은 곱씹을수록 더 당혹스럽다. “의협이 책임지고 풀어갈 테니 학생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태의 핵심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그러지 못하겠다는 건데, 이건 의협이 의대생들을 힘겨루기의 지렛대로 여긴다는 논리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난의 소지가 더 큰 대목은 의협의 이런 태도가 경찰 수사 단계로까지 비화한, 강경파 의대생들의 도를 넘은 복귀 방해 행위를 일정 부분 부추기는 시그널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귀 의대생 명단을 담은 소위 ‘블랙리스트’를 유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등록 실명 인증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겁박하는 건 상식적인 어느 누가 보더라도 폭력적이며 범죄로 간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의협이 의대생 집단 일각의 이런 일탈을 선동하고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의대생 미복귀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든, 의료계를 대표한다는 의협의 리더십과 그간 앞세워온 명분은 이미 크게 훼손됐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이라지만 본격적인 배움의 경로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대학생들’이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작금의 이전투구에 휘말리는 건 부적절하며 문제의 해결에 도움도 별로 안 된다.
의정갈등 사태와 관련해 가장 고약한 시나리오는 의-정의 무책임한 대치다. 정부가 의대생들의 전원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동결하겠다고 손 내민 건 의사집단의 성에 차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보자는 제스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의협은 이를 외면한 채 더 거세고 답 없는 참호전을 포기하지 않는 모양새다.
저들이 그토록 아끼고 걱정한다는 미래 의료의 주역인 의대생들은 부지불식간에 위태롭고 일방적인 참호전에 참전 당하고 있다. "아무도 위기에 처한 의대생을 도와줄 계획이 없다면 앞길이 창창한 의대생들은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라는 상식적인 얘기에 굳이 주목해야 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의협 내부에서 제적 시한 연기를 정부와 대학에 요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 건 이런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혼란의 수습을 위한 의-정 간 협의의 공간을 작으나마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행부 중심의 강경투쟁을 압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아 가늠하긴 어렵지만 내부를 환기하는 어떤 ‘균열’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의협은 의대생 제적이 현실화하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참호에 도사린 채로 그저 노려보다가 사달이 나면 들고일어나겠다는 이런 태도는 위태로워도 너무 위태롭다. 일단 그런 사달이 일어나지 않게 총력을 기울이고, 그래서 의대생들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게 우선이며 각론을 두고 지지고 볶는 건 그 다음이다.
학생들이 일단 복귀를 하더라도 재휴학·수업거부 등으로 교육이 파행할 가능성은 남는다. 의협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우선순위를 재설정함과 동시에 학교 현장의 정경이 더는 일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효진 바이오중기벤처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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