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7일째…지리산, 강원까지 확산
사망자 26명…의성에서만 22명 사망
통제불가 재해확산 우려…양산 대피령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괴물 산불'이 피해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 확산하고 있다. 크고 작은 재해가 합쳐져 통제 불능의 재앙으로 변하는 '퍼펙트 스톰'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전 5시를 기준으로 경북과 경남지역 산불 사망자는 26명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 피해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로만 22명이 희생됐고, 경남 산청 산불로도 4명이 숨졌다. 건축물 317개소가 소실됐고 주민 대피자 수도 2만2406명에 달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불의 기세는 원전(原電)이 있는 부산 기장과 울주, 동해안, 지리산 천왕봉을 넘보고 있다. 27일 비는 진화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재앙(災殃)으로 변한 산불, 역대 피해 기록 다 깨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을 발화지로 한 산불은 사실상 경북 내륙 산간 지역 전체와 경남 상당 부분으로 번지면서 역대 산불 피해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경북에서만 피해 지역이 3만3204㏊로, 역대 최대 피해로 기록된 2000년 강원 고성 동해안 산불을 넘어섰다. 천년고찰 낙산사의 동종마저 용해시켰던 동해안 산불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불과 일주일 만에 피해구역이 동해안 산불을 넘어선 것이다. 경남, 울산 산불 영향구역을 더하면 모두 3만5810㏊에 달한다. 축구장 5만100여개를 합한 면적이다.
인명피해는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망자 26명은 산림청이 산불 통계를 시작한 1987년 이후 1989년 산불과 함께 역대 가장 많은 산불 재해 사망자다. 사망자들은 경북의 경우 의성 1명, 안동 4명, 청송 3명, 영양 6명, 영덕 8명이었다. 사실상 경북 내륙과 경남 피해지역은 모두 산불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울주 온양 산불은 26일 오후부터 남하해 부산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울주군과 닿아 있는 경남 양산시에도 산불이 번져 대피령이 내려졌고, 부산 기장군도 장안사 내 문화유산을 급히 옮겼다. 청송에 있는 경북북부제2교도소와 안동교도소는 수용자들을 안전구역으로 긴급대피시켰다. 서산영덕고속도로 등 일대의 간선 도로까지 차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의성 산불은 울진, 포항을 거쳐 강원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동쪽 방향으로 안동, 청송, 영양, 영덕에 이어 울진 경계선까지 확산했다. 불씨가 흩날리면서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 현상'으로 강원 지역까지 불길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
엿새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경남 산청 불길은 지리산국립공원까지 번졌다. 지리산국립공원은 경남(산청·하동·함양)과 전남(구례), 전북(남원) 등 3개도에 걸쳐 있는 한국 1호 국립공원(1967년 지정)으로 면적이 483㎢에 달한다. 26일 오후 지리산에 인접한 구곡산 능선을 넘어 지리산국립공원 경계 내부까지 산불이 번졌다. 지리산 권역 산불 영향 구역은 20㏊가량으로 추정된다. 청송이 있는 주왕산국립공원은 이미 산림이 크게 소실된 상황이다.
전쟁터 같은 피해지역, 아비규환 속 대피
다수 사망자는 산불 연기에 질식해 숨졌거나 대피 과정에서 변을 당했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에서는 이장 부부가 주민들을 대피시키려다 숨졌다. 대피 장소인 석보초등학교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가 불길과 연기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선 지난 25일 밤 불덩이를 피해 입소자를 대피시키던 요양원 자동차가 폭발해 80대 3명이 숨졌다. 자동차가 7번 국도로 진입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불씨가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결국 차량 폭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산불에 폐허가 된 안동의 주택에서도 80대 남성이 숨졌는데 거동이 불편해 미처 대피하지 못하면서 변을 당했다고 한다.
사망자 상당수가 농촌이나 산촌에 사는 60~80대 노인들이다. 집을 지키려고 떠나지 않다가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고, 거동이 불편한 데다 재난 안전 문자를 제때 확인하기 힘들어 큰일을 당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지역들은 큰 도로가 없거나 구불구불한 임도가 많아서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을 가능성도 크다. 강원 인제군에서 온 산불 진화 헬기가 의성에서 추락해 조종사가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뒷걸음질 치는 산불 진화율,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진화율도 뒷걸음질 쳤다. 정부에 따르면 27일 오전 5시 기준 경북 산불의 잔여 화선은 355.4㎞, 진화율은 44.3%다. 26일 68%에서 크게 낮아진 것이다. 산청·하동 산불은 26일 오전 9시 기준 80%의 진화율에서 같은 날 오후 9시 77%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울산 울주 온양의 진화율은 26일 오전 92%에 달했지만 27일 76%로 물러섰다. 헬기 100여대와 지역별로 1000명이 넘는 소방 인력이 투입돼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좀처럼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바람이 문제다. 산불 확산이 잦아들려면 강풍이 잦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국지적 돌풍 등이 계속 예보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주요 산불 피해지역과 별개로 산불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26일 오후 대구 달성군 함박산에서 산불이 발생했고, 전북 무주 야산에서도 산불이 났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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