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하우시스·현대L&C·롯데케미칼 등 피소
규폐증 위험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 지적
지난해 유사 사례 100억원 손해배상 판례
미국 사업 전개 영향 가능성
미국에서 인조 대리석(엔지니어드 스톤) 가공 노동자들이 실리카 분진에 장기간 노출되며 폐 질환을 앓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건자재 기업들이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유사한 소송에서 미국 기업이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던 터라 국내 기업들의 법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적잖다는 관측이다.
26일 건자재 업계 등에 따르면 LX하우시스와 현대L&C, 롯데케미칼 등 미국에 진출해 사업을 운영하는 국내 건자재 기업들은 최근 현지 제품 가공 노동자 수백 명으로부터 손배소를 당했다. 이번 소송에 연루된 국내외 기업은 모두 5900곳(중복 포함)에 이르며 전체 소송 가액은 약 5조2000억원 규모다.
피해를 호소하며 소송에 나선 이들은 주로 인조 대리석을 가공하는 석재 제작자 및 건설 노동자들로, 장기간 실리카 분진을 흡입하면서 규폐증 등 폐 질환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제품을 제조·공급한 기업들이 규폐증 등의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적절한 보호 장비 착용과 같은 근로 지도도 하지 않아 피해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1992년부터 약 20년간 석재 제작자로 일하다가 규폐증 및 폐섬유증 진단을 받았다는 미국의 한 노동자는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에 LX하우시스와 현대L&C 등 석영(quartz) 기반 인조석 제조·유통업체 총 100여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안전데이터시트(SDS)에서 제품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May cause cancer)'고 표기했지만, 국제 암 연구소(IARC)는 이미 1997년에 결정질 실리카를 확정적 발암물질(Known Carcinogen)로 분류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거나 "실리카 노출로 인한 규폐증 위험을 명확히 경고하지 않았고, SDS에서 노동자들이 항상 호흡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지시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등의 '혐의'를 제시했다.
현지에서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례는 이미 나와 있다. 지난해 미국 법원은 이스라엘의 인조 대리석 제조업체 시저스톤을 상대로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기업들의 안전조치 소홀 책임 등을 인정해 약 7900만달러(약 100억원)를 배상토록 하는 판결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사 사건에서 기업의 책임을 무겁고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던 만큼 이번에 제기된 집단소송에서도 사실관계 입증을 전제로 비슷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 대한 본격적인 변론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원고와 피고를 포함해 관계 당사자가 워낙 많은 데다 소송가액이 커서 준비 절차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피소된 기업의 한 관계자는 "개별 기업당 소송가액이 어느 정도로 정리될지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내용은 현시점에서 알기가 어렵다"면서 "현지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적절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을 당한 기업들은 국내 건설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구조화함에 따라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힘써왔다. 글로벌 엔지니어드 스톤 시장에서 약 10%의 점유율을 확보한 LX하우시스는 2011년 미국 조지아주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이후 지속해서 생산 능력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에는 뉴욕에 쇼룸을 개설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강화했다. 지난해 LX하우시스의 총 건자재 매출의 19%(4867억원)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현대L&C도 2023년 미국에서 113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L&C가 가동 중인 5개 해외 법인 중 가장 높은 매출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배상액의 규모를 떠나 향후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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