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임직원 결집의 힘
연이은 사업 실패·기업사냥꾼 유치에 책임 물어
"주주는 주식회사의 손님 아닌 주인"
"제 인생 최고의 미친 짓이었어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미코젠 서울지점에서 만난 소지성 아미코젠 소액주주연대 대표(45·남)는 지난 1년의 행보를 이렇게 요약했다. 15년간 치과의사였던 그는 소액주주연대 대표로 활동하며 주주들을 결집, 50억원 규모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 혐의로 피소된 아미코젠의 창업주 신용철 회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소지성 아미코젠 소액주주연대 대표(왼쪽)가 지난달 26일 인천 연수구에서 열린 바이오 업체 아미코젠 임시 주주총회를 마치고 이상목 액트 대표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미코젠 소액주주연대 제공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상장사 300곳을 대상으로 '주주행동주의 확대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주 관여의 주체로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라고 답변한 기업이 90.9%(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고 연기금 29.2%, 사모펀드 및 행동주의펀드 19.2% 순이었다. 상장사가 공시한 주주제안 주체 가운데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 비중도 2015년 27.1%에서 지난해 50.7%로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대부분의 소액주주 참여는 배당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제한된 이슈에만 집중됐을 뿐 아미코젠처럼 소액주주들이 결집해 경영권에 변화를 일으킨 경우는 국내 주주행동주의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소 대표가 처음 소액주주연대와 연이 닿은 건 지난해 6월이다.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 소재 기업 아미코젠이 SI(전략적 투자자) 영입을 시도한다는 소식에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던 시기다. 소액주주 중 한명이었을 뿐 주총에도 관심이 없었던 그는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사측의 생각을 직접 들어는 봐야겠다는 판단으로 총대를 맸다. 아무런 명패도 없이 가려니까 이상해서 소액주주연대 대표라는 직함도 달았다. 그게 소액주주연대 활동의 시작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람 만나는 일이나 어디 나서는 것을 싫어해요. 치과의사 관련 모임도 거의 안 나가고 취미도 혼자 하는 헬스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SI 영입 시도·주주 불만 속에…'초짜' 주주연대 대표로 나서
아미코젠은 연이은 사업 실패로 주주들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아미코젠은 2023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진행하는 금곡벤처밸리의 모회사 테라랜드에 30억원을 출자했다. 하지만 부동산 불경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아울러 2021년 바이오 소재 기업 비피도를 6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손실만 안아야 했다. 결국 지난해 8월 150억원에 헐값 매각했다. 2015년 6월25일 장중 2만8952원에 달했던 아미코젠 주가는 지난해 12월10일 3075원까지 주저앉았다.
아미코젠 주주인 홍모씨(50·남)는 지난해 3월 정기 주총을 이야기하며 분을 참지 못했다. 홍씨를 비롯해 소액주주 30여명은 경남 진주시에서 열리는 정기 주총을 참여하기 위해 새벽 4시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양주역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내려가 사내이사 재선임을 시도하는 신 회장에게 사업 실패 등의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 홍씨 역시 수천만원을 투자한 것뿐만 아니라 친척, 지인 등에 투자 권유를 했던 터라 어떤 답변이라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소액주주와 소통하길 거부했다. 주주들이 회사 경영에 문제를 제기하자 사측은 주총장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로 이들을 주총장 밖으로 쫓아냈다.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진주시로 내려간 소액주주들은 절망할 뿐이었다. 신 회장은 그대로 사내이사 재선임에 성공했다. 홍씨는 다시 양주역으로 올라오는 버스 안 분위기가 침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액주주들이 주총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경찰도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며 "주주들은 비를 맞으며 문 닫힌 건물 앞에서 울분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주 결집뿐만 아니라…돈 관리·임직원 소통에도 집중
소 대표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먼저 한 것은 소액주주를 결집하는 일이었다. 소액주주끼리 뭉치지 않으면 사측과 싸울 힘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소액주주와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했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에 있는 아미코젠 소액주주를 만나러 다녔다.
무엇보다 신경 썼던 것은 돈과 정보 문제였다. 주주 간 신뢰 없이는 조직이 금방 와해되기 때문이다. 그는 회비를 걷어 소액주주연대 활동에만 쓰고 있다는 것을 주주들에게 깨끗하게 공개했다. 아울러 아미코젠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는 멀리했다. 소 대표는 "아무리 소액주주연대라고 해도 결국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이라며 "주가 향방이 궁금해 소액주주연대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정보 악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측에 매출 추이, 인수 및 합병 등 비밀스러운 경영 상황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 대표는 소액주주의 신뢰만 얻는다고 일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임직원들과 싸우기보다는 적극 소통해서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표쩌(한국명 박철) 대표이사를 만났다. 회사와 직원에 대한 애착도 있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외 이사진 구성원이었던 윤영철 사내이사, 오덕근 사외이사뿐만 아니라 진주시까지 내려가 본사 직원들과 만나서 애로사항을 들었다. 소 대표는 "소액주주연대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하루도 못 쉰 것 같다"며 "시간을 쪼개서라도 회사 직원과 이사진들을 만나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해임안' 올라오자…패배감 눌렸던 소액주주들 나서기 시작
아미코젠 임직원과 소액주주연대가 함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신 회장이 유동성 확보를 위한 SI로 이차전지 업체 광무를 선정한 것이다. 광무가 기업사냥꾼과 연관돼 있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광무가 들어오고 나면 기존의 바이오 사업보다는 케미컬(화학) 부문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데 주주들의 반감이 컸다. 소 대표는 "신 회장이 기업사냥꾼을 SI로 유치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이사진이 소액주주연대 쪽으로 기울게 됐다"며 "소액주주에게도 기업사냥꾼의 기업 장악 방법 등을 설명해 경각심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이후 이사진은 신 회장의 입지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1월 신 회장을 이사회 의장에서 해임했다. 이어 지난달 6일 최고전략책임자(CSO) 보직도 내려놓게 했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사진 간 갈등이 가장 격렬한 시점은 이사회를 통해 임시 주총의 안건에 신 회장과 그의 측근 박성규 사외이사의 이사 해임안을 올릴 때였다. 당시 신 회장은 창업주인 자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을 모두 고소하겠다고 소리 질렀고 이사들은 고개만 푹 숙였다고 한다.
지난 1월8일 임시 주총 안건을 정하는 이사회가 진행될 때 소 대표는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치과에서 진료 중이었다. 소 대표는 혹시 임시 주총에 안건이 못 올라갈까 계속해서 긴장했다. 그는 진료를 마치자마자 표쩌 대표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나요?"
"거수로 정했습니다. 3대2로…통과됐습니다."
소 대표는 안건 통과를 '영화 같은 일'에 비유했다. 이제는 신 회장을 이사에서 해임하기 위한 의결권을 모으는 일만 남았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자 패배감에 눌려있던 소액주주들도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소 대표는 주식을 많이 보유한 주주들을 모아 일명 '100인 결사대'를 조직하고 전국을 다니며 의결권 위임을 요청했다. 소액주주들은 반차를 내고 의결권 위임을 받으러 다니거나 다른 소액주주를 만나기 위해 경비실에 40분 동안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소 대표는 의결권을 모으는 작업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힘이 모이는 걸 보니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절대 악과 싸우는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1년 전 주총장서 쫓겨났던 소액주주…기업 중심에 서다

코스닥 상장사 아미코젠은 지난달 26일 인천 연수구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임시 주주총회에서 신용철 회장 사내이사직 해임안은 53.3%로 가결됐다. 아미코젠소액주주연대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지난달 26일 인천 연수구에서 아미코젠 임시 주총이 열렸다. 1년 전 퇴짜 맞았던 홍씨도 임시 주총에 참여했다. 홍씨는 올해 주총 분위기가 지난해와 정반대였다고 설명했다. 소액주주들은 쫓겨나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 주총을 지켜봤다. 항상 주총장 맨 앞자리에 앉던 신 회장은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일부 소란은 있었지만, 주총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1번 안건은 신 회장에 대한 이사 해임안이었다. 투표 결과, 53.3%로 해임안은 가결됐다. 반대표는 13%에 불과했다. 해임안이 가결되자 소액주주들은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신 회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홍씨는 "그 순간 사람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소 대표는 1년간 소액주주연대 활동을 하면서 체중만 10㎏ 빠졌다고 한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소액주주들이 보내주는 사연을 떠올렸다고 한다. "1억8000만원을 날리고 매일 술 마시는 사람, 60세에 상하차를 뛰는 사람 등 기구한 사연을 가진 주주들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제 주식이 물려서 사측 얼굴이나 보자고 해서 소액주주연대 활동을 시작한 건데, 알고 보니 너무 많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었습니다."
소 대표는 임시 주총에서 아미코젠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지배구조 정상화와 함께 주주가 주식회사의 주인이 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그의 목표에 주주들이 공감한 결과다. 소 대표는 "이번 주총에서 전자투표 의무화 안건도 통과했다. 아미코젠의 주주는 더 이상 손님이 아닌 주인"이라며 "좋은 기업으로 발전시켜 주주에겐 배당을, 임직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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