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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베껴 만든 中 '짝퉁 도시'에 수만명 연구원 몰리자 일어난 변화[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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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초대형 R&D 캠퍼스
유럽 도시 베꼈다며 조롱 받기도
연구원 2.5만명 수용해 혁신
위기에 화웨이 경쟁력 유지해

조 바이든 전 미국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고강도 대(對)중 제재에도 화웨이는 나름의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에선 이미 세계 1위이며, 자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개발에 성공했고, 인공지능(AI) 프로세서로 중국 기술 자립까지 도모하고 있지요.


위기에 강한 화웨이의 경쟁력은 연 매출 23.4%(2023 회계연도 기준)를 쏟아붓는 연구개발(R&D)에서 나옵니다. 특히 화웨이의 R&D 총본산인 '숭산(松山)호 시류베이포촌(溪流背坡村·시촌) R&D 기지'는 험난했던 시절 화웨이를 구한 회심의 카드가 됐습니다.

연구원 2.5만명 수용하는 여의도 절반 규모 연구 단지

화웨이 시촌 연구개발 기지. 화웨이

화웨이 시촌 연구개발 기지.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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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R&D 사령탑은 선전시 인근 둥관시에 위치한 시촌 R&D 기지입니다. 중국에선 '화웨이 유럽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중국 땅에 개발한 연구 단지인데, 유럽마을이라 불리는 게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과거 개발 당시 '짝퉁 유럽 도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시촌 기지는 2014년 착공해 2019년 완공됐습니다. 전체 면적은 약 54만평으로, 여의도의 절반쯤 됩니다. 이 어마어마한 부지에 유럽식 아파트와 궁전을 모방한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심지어 한 건물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꼭 빼닮았다고 합니다. 현지 디자인 매거진 '도무스차이나'는 완공 당시 캠퍼스를 방문한 뒤 "영혼이 없는 꼭두각시 건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요.


캠퍼스의 각 구획도 유럽 유명 도시 지명을 가져왔는데, 케임브리지, 파리, 하이델베르크, 볼로냐 같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화웨이가 직접 조성한 가짜 강이 캠퍼스를 관통하며, 스위스 산악 트램을 닮은 경전철이 주요 이동 수단입니다. R&D 업무에만 전념하는 시촌 기지는 한 번에 2만5000명의 연구원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부지 전체가 하나의 실험실…화웨이 경쟁력 지켜

시촌 기지의 교통 수단인 전기 트램. 화웨이가 개발한 첨단 통신 장비로 제어된다. 화웨이

시촌 기지의 교통 수단인 전기 트램. 화웨이가 개발한 첨단 통신 장비로 제어된다.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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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촌 기지의 진가는 캠퍼스 인프라를 지탱하는 기술력에서 나타납니다. 도시의 주요 이동 수단인 트램만 해도, 사실 트램의 모양을 흉내 낸 전기차입니다. 최첨단 배터리, 통신 체계, 아직 특허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무선 충전 기술을 도입해 제조했다고 하지요. 수만명의 연구원을 위해 간이 5G 통신국을 만들었고, 분산형 전력망으로 전기 관리도 효율화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실험적으로 도입된 기술들은 훗날 화웨이의 특허로 작성돼 기업의 기술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혹은 신제품에 접목될 수도 있습니다. 즉 시촌 기지라는 부지 전체가 화웨이의 신기술 테스트 센터인 셈입니다.

전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 점유율 31%(2023)를 거머 쥔 화웨이의 통신 연구 부서도 시촌에 있습니다. 화웨이의 4G, 5G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한 '안테나(天線) 혁신센터'가 이곳에 설립됐고, 수천 명의 통신 엔지니어가 근무합니다. 직원들에게 혁신 센터는 단순한 직장에 그치지 않고 회의장·식당 카페·여가 센터이기도 합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기업이 전담하면서, 핵심 인력인 엔지니어가 오직 제품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돕는 셈입니다.


미국 뉴저지 벨 연구소 빌딩. 거대 캠퍼스에 수천명의 연구원을 수용해 기술 개발에 전념한다는 연구개발 전략은 20세기 초 미국 대기업들이 최초로 고안했다. 어밴던드 아메리카 아카이브

미국 뉴저지 벨 연구소 빌딩. 거대 캠퍼스에 수천명의 연구원을 수용해 기술 개발에 전념한다는 연구개발 전략은 20세기 초 미국 대기업들이 최초로 고안했다. 어밴던드 아메리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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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연구원이 한 공간에 모여 연구에만 전념한다'는 개발 전략은 사실 미국에서 처음 고안됐습니다. 1925년 설립된 '벨 연구소'가 그 시초이지요. 미국의 초대형 통신 기업인 AT&T와 웨스턴 일렉트릭이 각각 지분 50%를 출자해 설립한 벨 연구소는 세계 최초의 기업형 초대형 연구 단지였고, 20세기 내내 미국의 통신 기술 혁신에 이바지했습니다. 벨 연구소의 사세가 정점에 이르렀던 1960년대엔 약 1만2000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근무했고, 1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유·무선 통신부터 현대 반도체의 핵심인 트랜지스터 발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신이 벨 연구소에서 쏟아져 나왔지요.


하지만 이제 '규모의 연구'는 중국 기업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는 듯합니다. 중국 1위 전기차 기업인 BYD도 지난해 선전시 룽강구에 200억위안을 투자해 19만평 규모의 R&D 캠퍼스를 짓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캠퍼스는 단순히 차량 완제품 디자인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나노 광학과 고분자 신소재 재료 연구 등 기초과학 및 기술 실험실이 대거 입주할 예정입니다.

中 과학 굴기에…미중 과학 협력도 경색

일각에선 중국의 과학기술이 일부 대기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곧 글로벌 1위인 미국까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과학 정책 전문가인 캐롤라인 와그너 미 오하이오대 행정학 교수는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의 연구 역량을 면밀히 분석한 바 있습니다. 와그너 교수는 "1980년대 중국의 학술 연구 논문은 글로벌 2% 미만이었지만, 내 계산으로는 2023년엔 25%에 달했을 것"이라며 "75년간 정상을 차지했던 미국의 군림을 끝냈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과학계의 부상은 미중 과학 협력의 촉진제가 됐습니다. 와그너 교수는 "2013년 이래로 중국은 과학 분야에서 미국의 가장 큰 협력국이 됐다"며 "미국의 공동 연구에는 수천명의 중국 학생, 학자들이 참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턱밑까지 추격하자, 양국의 과학기술 협력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12월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양자 기술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은 1979년 체결된 협정의 갱신·개정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과거와 다릅니다. 이전에는 미국과 중국 과학자의 공동 연구와 협업을 장려했다면, 새 협정은 중국 과학자가 미국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많이 축소됐고, 잠재적 분쟁 해결을 위한 조정 방안도 추가됐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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