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연맹(AL)이 4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에 대응하는 재건 계획을 채택했다고 AP 통신과 블룸버그 통신 등이 보도했다.
주최자인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 계획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가를 재건할 권리를 지키고, 그들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협력해 가자지구를 통치할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음 달 유엔과 협력해 가자지구 재건을 논의할 국제회의를 이집트에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AP 통신과 블룸버그가 확보한 이집트의 제안 초안을 보면 가자지구 재건에 5년간 총 532억달러(약 77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첫 6개월 동안은 가자지구에 중장비를 들여 건물 잔해를 치우고 가자 주민 수용을 위해 7개 지역에 임시 주택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2년간 주택 20만호를 건설하고, 마지막 단계 2년 반 동안 추가 주택 20만호와 공항을 세운다.
재건 기간 아랍 국가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가자지구 지역 문제를 관리하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이를 넘겨주게 된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세계은행(WB)이 감독하는 신탁기금이 조성된다.
엘시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가자지구의 일상 업무는 기술 관료와 비당파 인사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가 운영하며, 이는 PA가 가자지구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집트는 초안에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도 포함했다가 최종안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인근 국가로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자 아랍권에서 거센 반발이 나왔다. 특히 이주 후보국으로 거론되는 이집트와 요르단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번 재건 계획은 미국의 가자 구상에 따른 아랍 국가들의 대응책이다.
회의 후 엘시시 대통령은 자국의 가자지구 재건 구상을 아랍 국가들이 수락했다고 밝혔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이날 회의에서 이집트 제안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여건이 된다면 대통령 및 의회 선거를 치를 준비가 됐다"며 "PA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유일하게 합법적인 통치·군사 주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성명에서 전후 위원회 구성 등을 포함한 이집트의 제안과 아바스 수반이 언급한 선거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 같은 구상을 받아들일지는 불분명하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아랍연맹 선언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2023년 10월 7일 이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부패와 테러 지원 문제를 가진 PA와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계속 의존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가자 주민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할 기회가 생겼으며, 이를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랍연맹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는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 등 중동·북아프리카의 지도자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참석했다. 작년 말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축출한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도 주최국 이집트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대신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외무장관이, 아랍에미리트(UAE)도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대통령이 아닌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외무장관이 대신 참석했다.
앞서 지난달 21일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지도자들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초청으로 사우디에 모여 이집트의 제안에 의견을 나눈 바 있다.
AP 통신은 이번 정상회의에 중동의 '큰손' 사우디와 UAE 정상이 빠진 점을 언급했다. 재건 자금을 조달하려면 이들 양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가자지구 통치와 안보, 하마스의 미래 등에 대해 아랍연맹 내 이견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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