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조류독감 창궐로 계란 공급부족
암탉 대여해 자급자족
미국 내 계란 가격이 1년 만에 2배 가까이 급등하며 물가 상승세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조류독감으로 2022년 이후 1억5000만마리에 가까운 닭이 살처분돼 공급부족이 극심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내에서는 아예 암탉을 키워 계란을 자급자족하는 가정이 늘면서 '암탉 대여 서비스'가 생기고, 곳곳에서 계란 도둑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물가안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단기간에 계란 공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이션 주범 된 계란…1년 만에 가격 2배 급등
미국의 계란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급등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집계한 지난달 12개입 계란 1판의 월 평균 가격은 4.95달러(약 7136원)를 기록해 1년 전 2.52달러 대비 96.4% 상승했다. 노동통계국은 "1월 계란 가격 상승률은 가정 내 식품물가 상승분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계란 가격 급등세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분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슈퍼마켓 등 소매점을 비롯해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은 계란 평균 가격보다 높은 7달러 이상에 사들이고 있다"며 "지역마다 편차가 있어 일부 지역 소비자들은 더 큰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연중 계란 수요가 가장 많아지는 4월 부활절 축일을 앞두고 계란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가격 급등세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올해 계란 가격이 20%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2022년 조류독감 창궐 여파…1억5800만마리 살처분
미국에서 계란 가격 급등세가 나타난 주된 요인은 2022년부터 창궐 중인 조류독감이다. 조류독감 확산에 따라 지난 2년간 미국 내에서 1억4800만마리 이상의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계란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USD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계란 생산량은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조류독감을 유발하는 조류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하면서 지난달에도 2200만마리의 산란계가 살처분됐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로 가금류를 통해 전염되지만,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소 등 가축이나 사람에게까지 전염되고 있다. 지난달 6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H5N1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 환자가 보고되기도 했다.
예상보다 조류독감이 더 많은 지역에 퍼졌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13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H5N1이 아직 확산하지 않은 지역의 수의사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흔적이 발견됐다. CDC는 미국 46개주 낙농업 분야 활동 수의사 150명을 조사한 결과 H5N1 미검출 지역에서 일한 수의사 3명에게 바이러스 감염 흔적이 나왔다고 밝혔다. CDC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확산한 지역이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증상이 없는 낙농업 종사자와 사육사에 대해서도 조류독감 감염 검사를 더 많이 실시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암탉 대여, 계란 도둑도 극성…트럼프 행정부 대안 고심
조류독감에 따른 계란 가격 급등에 미국 가정에서는 집에서 닭을 키워 달걀을 자급자족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미국 반려동물제품협회 집계에서 지난해 미국 내 닭을 키우는 가정이 1100만가구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8년 580만가구 대비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암탉을 대여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가정에 암탉 2~4마리와 닭 사료, 사료 접시 등을 5~6개월간 임대하는 방식이며 닭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을 위해 닭장을 직접 설치해 주는 업체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닭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지만, 달걀 가격 급등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닭을 직접 키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아닌 달걀만 전문적으로 훔쳐 가는 도둑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1일 펜실베이니아주 그린캐슬의 한 식료품업체 운송 트레일러에서 계란 10만개가 도난당했다. 5일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식당 창고에 도둑이 들어 540개의 계란을 훔쳐 달아났다.
계란 대란이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대책 마련을 고민 중이다. 물가급등세를 잡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만큼 계란 가격 급등에 따른 정치 부담도 커지고 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됐던 인플레이션이 이제 그의 새로운 문제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류독감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고, 계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 16일 "정부 내 최고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 전문가들과도 협력 중"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닭을 무작위로 살처분하는데 수십억달러를 쓰면서 지금의 상황이 됐다. 무차별 살처분 전에 생물보안조치, 약품 등을 통한 대안 마련에 나섰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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