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집에서 눈 감을 수 있는 권리
늘어나는 '병원객사'
노인들 내 집에 살도록 하는
‘통합돌봄’ 갈 길 멀어
올해 예산 고작 70억원 그쳐
시범지역 전국 12개 뿐
원하는 장소에서 숨 거두도록 돕는 정책
노인 존엄 위해 필요
‘호상(好喪)’. 복을 누리고 오래 산 노인이 세상을 떠날 때 쓰는 말이다. 천수를 누렸다는 것을 넘어 어르신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상태였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까지 호상의 조건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위암 환자였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민기정씨(55)는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고 해서 집으로 모셨는데, 집에 오신지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며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이 병원 침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민씨의 아버지는 하루종일 돌봐줄 가족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드물다.
통계청의 ‘사망장소 변화’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100명 중 15명이 집에서, 75명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1999년만 해도 집이 58명, 병원이 32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병원 객사’ 하는 어르신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기간에 주택 사망이 늘긴 했으나 병원 이용이 여의치 않아 잠시 증가한 것뿐이었다.
반면 일본은 '지역포괄케어' 정책으로 의료·돌봄이 지역사회·자택 중심으로 바뀌면서 자택 사망 비율이 2016년(13%)부터 상승해 2022년에는 17.4%까지 증가했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은 "일본도 한국처럼 코로나 기간 자택사망 비율이 늘었는데 이유는 우리와 정반대였다"며 "일본 정부가 방문의료를 늘려서 노인들이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이었던 2023년 일본의 하루 재택의료 이용자는 23만9000명에 달했다. 1996년 통계 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로,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85.3%에 달했다.
집에서 눈 감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기 위한 ‘통합돌봄’을 내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시작하지만 갈 길이 멀다.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 중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관련 예산은 71억3000만원이다. 전년(68억8000만원) 대비 3.6% 증가에 그쳤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휴먼서비스학과 교수는 "이는 물가상승률과 같은 수준이라 예산 확대로 보기 어렵다"며 "시범사업 지역도 전국 229개 중 12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생의 끝자락에 선 노인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숨을 거두도록 돕는 정책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필요하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통합돌봄을 통해 ‘집에서 죽을 권리’를 포함한 개인의 선택권 보장과 함께, 지역 간 격차 없는 노인 재택 돌봄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심나영 차장(팀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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