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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지워달라" 요청에 자다가도 벌떡…오늘도 820개 음란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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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해자 '잊힐 권리' 위해 싸우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르포

"긴급 삭제 요청 오면 새벽에도 벌떡"

"트위터에 성 착취물 영상이 발견됐습니다!"


박성혜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 삭제 팀장은 새벽 2시에도 이런 긴급 삭제 요청 건이 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1분 1초도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이렇게 지난 한 해, 1만8760건의 불법 성 착취 영상물을 지웠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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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팀장이 일하는 디성센터를 지난 5일 찾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1만명에게 도움을 준 이곳은 겉보기엔 일반 사무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되자 "잠시 삭제 중단해주세요!"라는 외침과 함께 일제히 업무가 멈췄다. 디성센터 내 삭제 인력 외 누구와도 공유되어선 안 될 영상들을 지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화장실, 탈의실 등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신체를 불법 촬영한 영상부터 연인과 찍은 촬영물이 본인도 모르게 유포된 영상, 성적 불쾌감을 주는 영상에 본인 얼굴이 합성·편집된 영상 등 각종 성범죄 피해 영상물을 삭제한다.


피해자들이 '제발 지워달라'며 벼랑 끝에서 호소하는 곳, '지울 테면 지워봐라'고 조롱하는 듯 영상물을 퍼 나르는 이들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 바로 디셍선터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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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N번방', 2024년 '자경단' 사건 등을 거치며 디성센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불법 영상물 근절을 강조하며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디성센터를 연 지 6년이 지났지만, 지워야 할 불법 영상물은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삭제 업무를 맡고 있는 인력은 총 16명에 그친다. 그나마 올해 2명 추가돼 18명이 일한다. 박 팀장도 이 중 한 명이다.


매일 각종 불법 사이트와 텔레그램 등의 플랫폼을 모니터링하며 하루 평균 820개의 성범죄 음란물을 지운다.


누군가의 '잊힐 권리'를 위해 일한다지만, 매일 독버섯처럼 퍼지는 피해 영상물을 모두 찾아내 지운다는 게 가능할까.


박 팀장은 "지원이 강화되면 좋겠지만,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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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곳에서 집중 모니터링하는 300여개의 성인사이트에 올라간 영상 중 피해 영상물과 유사한 것이 있는지 찾아낸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DNA 검색이다. 각 영상물이 가진 고유한 값을 매칭해 찾는 식이다. 피해 영상물은 원본 외에도 합성 등 재가공돼 유포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편집된 것까지 잡아낸다.


이외에는 모두 수동으로 이뤄진다. 기술로 보조적인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맨눈으로 확인해 호스팅 업체에 삭제 요청을 하기 때문이다. 호스팅 업체별로 삭제 기준도 천차만별이라 요청한다고 곧바로 처리되는 것도 아니다. 영상에서 주요 신체 부위가 찍히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 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곳부터, 특정인이라고 규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곳 등 삭제 업무가 원활하지 않은 일이 허다하다.


일례로 특정 키워드로 퍼진 영상에서 피해자와 영상을 자주 소비하는 가해자들은 제목만으로도 특정인을 알 수 있지만, 호스팅 업체에선 '피해자를 특징지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라면서 삭제를 거부하는 식이다. 즉 일반 음란물인지, 불법 성 착취 영상물인지 확인할 수 없기에 삭제 요청을 해도 지워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혜 팀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박성혜 팀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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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범인이라면'이라고 가정해가며 어느 사이트에, 무슨 제목으로 올렸을지 생각하며 키워드 검색을 해 삭제 업무를 하기도 한다. 삭제 업무가 숙련되면 특정 유형의 영상이 유독 유포되는 사이트를 알게 된다고 한다.


국제협력이 필요한 경우도 다반사다. 매년 삭제하지 못한 영상이 25%가량 되는데,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다. 국제협력을 통해서는 한 번 작업할 때마다 1개 영상을 삭제하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영상을 일괄 삭제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업무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국제협력 인력 2명을 확보한 이유다.


여가부는 지난해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에 따라 예산을 증액해 삭제 인력을 33명까지 늘리고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인 센터 운영시간을 24시간 체제로 바꿀 계획이었지만, 마지막 관문인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현재 삭제 인력의 근무시간 외 발생하는 긴급 삭제 요청 건은 3교대로 돌아가는 상담 인력이 '영상 발견 후 삭제팀에 요청'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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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팀장은 "디성센터가 사후 지원하는 곳이란 한계가 있지만, 유포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이 있다"며 기사 말미에 꼭 '1366'번을 담아 달라고 했다. 1366은 작년 말 정부가 내놓은 대응 강화 방안 중 하나로, 디지털 성범죄 상담 창구를 일원화한 번호다.


그는 "대다수가 디지털 성범죄를 '신고'한다고 생각해 두렵고 부담스러워한다"면서 "본인이 딥페이크 피해나 영상 유포 협박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곧장 연락 달라"고 했다. '채팅하다가 상대가 신체 영상을 보내달라는데 보내줘도 되나' 싶은 순간에도, 영상이 아직 유포되지 않았다며 머뭇거릴 게 아니라 피해 지원을 요청하란 얘기다. 진술한 내용과 부합되는 영상이 모니터링을 통해 검색되면, 디성센터에서 이를 즉각 삭제해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이 퍼지기 시작하면 손쓸 수가 없어요. 일단 삭제 먼저 합시다."


현재 디성센터에서는 삭제 인력 18명, 상담 인력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24시간 대응하려면 총 60명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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