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표 매운맛 '와사비'
약초로 쓰이다가…에도시대부터 초밥 양념으로
생선 많이 먹는 일본…방부·제균 역할도
요즘은 한국인도 고추냉이의 톡 쏘는 맛에 꽤 익숙한 듯싶습니다. 횟집뿐만 아니라 고깃집을 가도 고추냉이를 주는 경우가 많죠. 느끼한 맛을 잘 잡아주는 것 같아 생각보다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 식문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고추냉이인 와사비입니다. 한국에서 매운맛은 고추 매운맛인데, 일본에서 매운맛은 와사비의 매운맛으로 인식이 되죠. 와사비에 들어있는 시니그린이라는 성분은 산소와 만나면 휘발성 물질인 알릴이소티오시아네이트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를 자극한다고 해요. 휘발성 물질이다 보니 기체가 돼 코를 자극하면서 코가 찡한 맛도 같이 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한국과 다른 매운맛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오늘은 일본의 식문화, 와사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일본인들은 정말 오래전부터 와사비와 함께했습니다. 6세기 중반 아스카시대에는 와사비를 약초로 사용하고, 세금도 와사비로 납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해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약초 사전인 '본초화명'에도 와사비를 약초로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요.
원래 자생종이었던 와사비는 에도시대 초기 재배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와사비를 좋아했던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합니다.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막부 초대 쇼군으로 올라섰던 사람이죠. 와사비를 진상 받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잎이 도쿠가와 가문 문양과 닮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반출하지 못하게 했다고도 해요. 그리고 16세기 무렵에는 지금의 시즈오카시에서 본격적으로 와사비 재배를 시작했다고 해요. 시즈오카의 명물이 와사비인 이유는 여기에 있답니다.
초밥에 와사비를 얹기 시작한 것도 에도시대라고 해요. 당시 지금처럼 냉동이나 냉장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생선은 금방 냄새가 나거나 상하기 쉬웠죠. 와사비는 이 비린내나 세균 증식을 억제해 식중독을 예방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튜브 형태에 들어있는 와사비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냉장 기술과 물류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 분말 만드는 기술에서 힌트를 얻어 와사비를 말린 뒤 분말로 만든 가루 와사비가 등장했는데요. 이후 지금과 같은 페이스트 형식의 와사비로 발전하게 됐다고 합니다.
다만 생각해 볼 점은 왜 고추 대신 와사비가 이렇게 공고한 인기를 얻게 됐느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모두 고추가 전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초부터는 고추를 일상의 식자재로 사용하고 고명으로도 얹는 식문화가 정착되게 됐는데요. 이 때문에 왜 고추는 한국에, 와사비는 일본에서 각자의 위상을 얻게 됐는지를 연구한 것도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주식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1인당 어패류 소비량도 일본은 언제나 세계 상위권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본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데요. 서기 675년 소, 말, 개, 원숭이, 닭의 고기를 먹지 말라는 살생금령이 내려지기도 했던 나라가 일본이죠. 그 이후에도 국가 차원에서 육식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오래 형성됐기 때문에, 육식보다는 해산물을 더 많이 섭취하는 방향으로 식문화가 정착되게 됩니다. 그래서 회, 초밥, 생선튀김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법이 탄생하게 되죠. 사실 농경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일본처럼 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선호하는 식문화는 보기 드물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육 등 고기 요리가 비교적 일본보다 발달한 식문화였기 때문에 고추가 정착되기 쉬웠다는 게 일본 논문의 분석이네요.
이처럼 해산물을 많이 먹는 일본에서 와사비는 제균, 방부의 역할을 하기에 굉장히 중요한 식자재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날이 더운 일본에서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이 식욕을 돋우는 역할도 했다고 해요.
다만 요즘 일본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중심으로 와사비의 맛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도요게이자이에는 "최근 고등학생들이 매운맛을 좋아하게 된 배경으로 와사비가 아니라 고추를 꼽는다. 아마 고춧가루를 많이 쓰는 한국 음식을 접하게 된 영향일 것이라 분석한다"는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요즘 애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안타깝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요. 젊은 세대들이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현상인 것 같은데, 또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 식문화가 바뀔지도 궁금해집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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