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유치원 문 닫고 건강돌봄학교 생겼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생긴 건강돌봄학교
근처 노인들 경로당 대신 이곳으로 '등교'
운동, 미술, 요가, 요리교실 열고
만성질환 예방 관리 방법도 알려줘
아파트 살아도 비싼 실버타운 부럽지 않아
집에서 노후 보내도록 도움
대전시 대덕구 법동 한마음아파트 1단지에 있던 유치원은 2년 전 문을 닫았다. 30년 가까이 동네 아이들을 돌보던 곳이었지만 저출산 탓에 입학생이 줄자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아쉬움도 잠시, 그 자리를 법동 어르신들의 온기가 채우기 시작했다. 유치원이 있던 건물에 지난해 노인들의 보금자리인 '돌봄건강학교'가 들어선 것이다.
'걸어서 5분' 아파트 사는 노인들 몰려
동네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에게 가깝다는 게 돌봄건강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곳이 생긴 이후 김무명 할머니(75)의 일상도 달라졌다. 한마음아파트가 집인 할머니는 오전 9시만 되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5분 거리의 학교로 향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는 건강했지. 멀리 있는 여성회관, 노인대학 같은 곳도 30분씩 버스 타고 댕겼거든. 작년부터는 조금만 걸어도 관절이 아파서 못 가겠더라고. 그런데 마침 집 앞에 이런 게 생겨서 너무 신나."
대전은 인구 20%가 노인일 정도로 고령화된 도시다. 하지만 노인복지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덕구처럼 인구와 아파트가 몰린 곳은 새로 시설을 지을 공간조차 마땅치 않다.
김영례 대덕구 복지정책과 통합돌봄정책팀장은 "시설 부지를 찾다 못해 산속에 복지관을 만들었는데 버스에서 내려도 한참을 올라가야 해서 어르신들이 가기에 불편했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덕구는 아파트 단지 내 문을 닫은 어린이집 자리에 돌봄건강학교를 마련한 것이다.
김 팀장은 "근처에 어르신들이 걸어서 오갈 만한 아파트 단지가 10개 정도 된다"며 "아파트촌에 돌봄건강학교를 세우면 어르신들 수요가 많아 효율적"이라고 했다.
"아파트 살아도 비싼 실버타운 부럽지 않다"
돌봄건강학교의 하루는 점심 먹고 고스톱을 치는 게 일상인 여느 아파트 경로당과는 다르다. 운동교실, 미술수업, 요가, 독거 어르신을 위한 요리 교실까지 프로그램만 스무개 남짓 된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예방·관리하는 법도 가르쳐준다.
근처 선비마을 1단지 아파트에 사는 한필수 할아버지(81)는 "여기서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챙기니까 늙는 속도도 느려지는 것 같다"며 "아파트에서 살아도 비싼 실버타운 들어간 친구들 부럽지 않다"고 했다.
대덕구는 법동 말고도 중리동, 덕암동까지 아파트 단지 내 돌봄건강학교 세 곳을 운영 중이다. 그 중 중리동 돌봄건강학교는 2023년 8월 중리주공아파트 3단지 상가에서 폐점한 PC방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82세 동갑내기 김춘자·주정자 할머니는 이곳에서 만난 '베프(Best Friend)'다. "나는 남편 보낸 지 10년 됐고, 얘는 20년도 더 됐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한데 집 앞에 이런 데가 생기니 너무 좋지. 오늘은 열쇠고리를 만들었어. 예쁘지? 여기 오면 할 거 천지야. 좀 있다가는 옆방에서 하는 운동 교실 가야 해."
김 팀장은 "돌봄건강학교를 동마다 하나씩 만들려고 한다"며 "어르신들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실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덕구 돌봄건강학교 운영방식을 배우려는 제주도, 인천, 경기도 공무원들이 잇달아 방문하기도 했다.
대전=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심나영 차장(팀장) sny@asiae.co.kr
강진형 기자(사진) ayms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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