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5년 사이 12% 증가
질환 치료 피부과는 극소수
최근 추운 날씨에 두꺼운 양말을 자주 신다가 무좀에 걸린 A씨는 서울의 한 피부과 의원을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피부과 의원 직원으로부터 무좀은 약을 바르면 나으니 인근 병원 진료를 권유받은 것. A씨는 “서울에 널린 게 피부과인데 정작 피부가 아픈 환자는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두드러기나 아토피 등 피부 질환을 겪는 이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이들이 찾는 피부과 의원에서는 이들을 문전박대하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형이나 시술 등이 피부과 의원들의 우선순위에 자리 잡으면서 정작 피부 질환 환자들은 직접 진료가 가능한 다른 진료 과목 의원들의 명단을 공유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23일 아시아경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피부과로 표시된 의원급 의료기관 수는 1436곳으로 5년 전인 2018년(1279곳) 대비 12.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피부과로 표시된 의원급 종사 의사 수도 2157명에서 2454명으로 13.8% 늘었다.
이처럼 피부 치료 인프라는 나아졌지만, 정작 질환 관련 진료를 보기는 어렵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미용시술 전문 피부과 비중이 높은 강남권이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세 살배기 아토피 환자를 키우는 김모씨(37)는 “인근 1㎞ 반경에 피부과만 수십 곳인데 정작 아토피 관련 진료를 받으려면 택시를 타고 다른 구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기자가 강남권 소재 피부과 의원 15곳에 “흑색종 의심으로 피부조직검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한 결과,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진료를 거절한 의원들은 보톡스, 필러, 레이저, 모발이식 등 객단가가 높은 시술을 중점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처럼 피부 질환 진료를 받기가 어려워지자 온라인에서는 관련 진료를 보는 타 과목 의원을 공유하는 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피부 질환 진료를 보는 병원을 추천해 달라는 글에 “백발의 의사 선생님이 외래진료를 정성껏 봐주는 ○○ 의원을 가라”는 답글이 달리기도 했다. “화상을 입었을 땐 외과, 아토피엔 가정의학과 의원을 가도 되더라”는 댓글도 있었다.
전문가는 피부 질환 진료를 보는 의원과 미용시술 중심의 피부과 의원을 구분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점 제거 등 경미한 피부 질환을 치료해야 할 피부과 의원에서 정작 환자들을 가려 받는 건 소비자 권리가 침해되는 사례”라며 “피부과를 개원할 때 피부 질환 진료 권고 내지 의무 비율을 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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