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2기 정부 초 골든타임
정치혼란 매몰되면 늦다
조선·반도체·車협회 대화나서야
中대체 1등협력국…LNG운반선 등 발굴
아시아경제 2025년 1월 채텀하우스. 왼쪽부터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최일권 아시아경제 산업IT부장,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허영한 기자
▶사회=최일권 산업IT부장
<사회> 트럼프 통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상호주의 원칙을 통상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토론자 A> 1930년 대공황 이후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까지 관세를 올리겠다고 한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고 이제 관세는 거의 모든 정책 중 가장 큰 이슈가 된 것 같다. 세계를 향해 "미국에 입장료를 내라"는 메시지가 보편관세다. 중국에는 6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면서 임기 4년간 중국은 미국에서 디커플링(탈동조화)하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지난달 각료를 임명하면서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콕 집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토론자 B> 트럼프는 상호관세법을 자국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 같다. 무역적자, 불공정, 미국 내 일자리, 제조업 등을 묶어서 미국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상호관세법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미국은 농산물, 서비스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다. 상호관세법 적용으로 교역 상대국이 반감을 드러낼 경우 농산물, 서비스 관련 걱정이 많은 주(州)나 단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토론자 C> 상호주의는 관심 있는 분야와 국가에 통상 정책을 집중해서 대화, 협박, 거래(딜)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상호관세법은 상대와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법이다. 트럼프의 관심 산업과 국가가 무엇인지 잘 들여다봐야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다.
<사회> 관세를 올리면 미국 물가 상승 압박도 커지지 않나.
<토론자 C> 트럼프는 괜찮을 것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럽, 중국도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세계경제, 특히 한국처럼 교역을 많이 하는 국가의 여건은 악화할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관세를 때리면 불가피하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조금은 생길 것 같다.
<사회> 통상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이 시급하게 손봐야 할 대상일까.
<토론자 B> 상호무역에서는 미국과 상대국 간 관세 격차가 커야 상대 관세를 바꿀 수요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동차 관세가 2.5%고 유럽연합(EU)은 10%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이미 관세를 철폐한 부분이 많다. 양국 간 관세 차이는 크지 않다. 한미 FTA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한국은 상호무역을 적용하는 우선순위와는 거리가 멀다. 캐나다, 멕시코, 중국, EU, 다음이 한국과 일본이다. 다만 한국 대미 흑자의 60% 이상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만큼 자동차 맞춤 관세 정책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토론자 C>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557억달러(약 81조2000억원)로 늘었다. 트럼프는 그런 부분부터 본다. 무역수지 균형을 바로 잡자면서 자동차 적자를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떤 루트로든 시정 요구를 할 것이다. 일정한 수준의 관리 무역을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차 100만대를 무조건 사 가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한미 FTA 체결을 근거로 보편관세 대상에 빼달라고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으로) 나가면 국내 고용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작업을 빨리 하고 한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사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FTA 재개정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토론자 D> 그렇다. FTA 때문에 적자가 많이 나니 무조건 바꾼다는 접근보다는 중국 견제 관점에서 제3국 우회 수출을 어렵게 만드는 시도를 할 것이다.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사가라고 강력하게 압박할 수도 있다.
<사회> 한국이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 내에서 잘 할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하는 방법은?
<토론자 B> 조선업을 제시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 대체에 필요한 1등 협력 국가다.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외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수익성 높은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미국은 천연가스 관련해 루이지애나, 텍사스에 터미널을 만들고 있어 기자재가 필요하다. 최근 천연가스 가격도 다시 올라가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간 천연가스관이 닫혔기 때문이다. EU로서는 미국, 중국, 카타르뿐이다. 운송 수단은 배 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산 LNG운반선을 쓸 수 없다. 한국에 기회다. 에너지 분야에서 소형모듈원전(SMR)을 파운드리(위탁생산)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중국 외에 SMR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바이오의약품에서도 중국 대안으로 한국이 떠오를 수 있다. 태양광, 풍력도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협력 대상 1순위다.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열린 채텀하우스 좌담에 앞서 왼쪽부터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영한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사회> IT 분야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라는 변수가 있다.
<토론자 C> 한국의 인공지능(AI) 투자 규모가 세계 3위라고 하지만 AI는 1등이 독식하는 시장이다. 한국 투자 규모는 1위 국가의 20분의 1도 안 된다. 미국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모든 분야에 적용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미국이 만든)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해진다. 머스크는 이 같은 프레임을 짜는데 큰 영향력을 지닌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은 전문직 비자(H-1B) 쿼터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미국에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사회> 트럼프 1기에선 중국 반도체 추격의 시간을 늦췄다.
<토론자 B> 이번엔 반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요즘 반도체가 디스플레이의 데자뷔 현상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에서 한국은 무소불위였다. 중국이 값싸고 작은 제품을 만들고 한국 인력과 기술을 확보해가면서 LCD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도 한국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 중국은 국가 펀드를 만들어 기업 적자에 신경쓰지 않고 ‘될 놈’은 무한정 밀어준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기회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중국 자립 의지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제재가 과연 한국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회> 한국 정치 혼란으로 트럼프 2기 정부 초기 ‘골든타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토론자 C> 빨리 수습해야 한다. 조기 탄핵 인용 여부와 관계 없이 대표성을 갖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트럼프는 권한이 있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한다고 한다. 트럼프가 취임 72시간 안에 행정명령 25개를 선언한다고 한다. 경제 조항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패키지 딜’ 형식으로 이슈와 사안을 정리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합리적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토론자 A> 결국 비즈니스다. 조선, 반도체, 자동차 기업과 협회 중심으로 한국의 고민, 미국 경제에 기여한 사항을 알려야 한다. 민간이 정부보다 더 세련되게 할 수도 있다. 각 업종 협회가 미국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가 골든타임이다. 중국 굴기를 견제하는 데 한국이 어떤 부분에서 기여할 수 있는지 잘 정리해서 끊임없이 미국과 대화해야 한다. 각료 지명자 인준 청문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들보다는 미시간, 텍사스, 오하이오, 조지아 등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지역)' 상원의원들과 접촉해야 한다. 상원 의원 100명 중 공화당이 53명, 민주당이 47명이다. IRA 법안 관련 한국 의견 반영 사항을 상원에서 통과시키려면 4명을 움직여야 한다. 4명은 트럼프보다 오래 정치할 사람들이다. 잘 활용해야 한다.
<사회> 기업들은 '트럼프 4년'으로 끝날지 궁금해한다.
<토론자 C> 트럼프 정부 정책이 기존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친환경 정책이다. 사실상 용도폐기한다고 한다. 취임하는 날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다고 한다고 할 정도다. 4년간 환경 관련 여러 정책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애프터 트럼프'에도 디지털·녹색 전환은 유효할 것으로 본다. AI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였다. 장기적으로 대전환 준비를 하던 대로 계속해야 할 것이다.
<토론자 D> 동의한다. 길게 보면 '친환경'이라는 대세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중국에 대해 미국 국민이 느끼는 반감 내지는 패권 경쟁 구도는 어느 쪽이 집권하든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상수가 될 것이다. 한 번 협상하면 오래 가는 조항들을 조심해야 한다. 관세, 업종별 쿼터 할당 이런 조항은 누가 집권해도 이어질 것 같다. 방위비 분담 문제는 미국 정권을 어느 쪽이 잡느냐에 따라 상당히 유연하게 적용될 것이다. 지속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잘 나눠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사회> 트럼프 4년 이후 미국의 통상 정책은.
<토론자 B> 바이든 정부 출범 때 트럼프 1기 정부 정책이 크게 후퇴할 줄 알았다. 바이든 정부 때는 미국이 동맹국과 가치동맹으로 함께 가는 기조여서 한국에 대한 통상 조치가 완화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유무역 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미국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든 개별 국가를 타깃팅한 무역 정책, 중국에 대한 패권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토론자 A> 크게 보면 2016년을 기점으로 세상이 달라졌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불만이 전문가가 보는 '매크로(거시) 뷰'를 압도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세계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른 형태의 세계화가 이어질 것이다. '경제안보'라는 단어를 쓰지 않나. 민감한 거래를 할 때 '체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은 달러 쪽에 서 있다. 무게중심이 넘어가는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워싱턴의 파워 엘리트들은 이 '게임'을 2050년까지는 하려는 것 같다. 이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피크(절정)'를 지났다. 한국 입장에서는 제조업에서 향후 10~20년간 계속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기는 전환(win transition)'을 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미국·중국 중) 시그널(신호)을 준 곳이 없다.
대담=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정리=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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