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한국 산업계 대응
"관세 공약은 협상용 카드"
현지 투자 기조 이어갈 전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우리 반도체 업계는 보편관세와 보조금이 거론된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추가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한국산 반도체 수출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정부가 보편관세를 10%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이 약 152억달러(약 21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인수팀에선 세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거나 선별관세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고율 관세 공약은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반도체 지원의 근거인 칩스법이 축소될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법안으로 수혜를 본 지역이 텍사스주(삼성전자), 인디애나주(SK하이닉스) 등 공화당 지지 지역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현지 생산에 370억달러(약 54조 원)를,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체결된 보조금 계약은 투자 진행 상황에 따라 지급된다"며 "트럼프 신정부와의 신뢰 상실로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책 변화에 맞춰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며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환율 급등 등으로) 투자 속도 조절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투자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신정부는 중국을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신현철 반도체공학회장 겸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과 장비 접근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거나 공급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대한 시장인 중국을 잃을 위험이 크고, 중국의 기술 자립화를 가속해 더 큰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전력기기, 북미 시장 호기
지난해12월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앞줄 왼쪽 두 번째)과 계열사 KOC전기의 김호량 사장을 비롯한 양사 임직원들이 울산공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생산공장 증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LS일렉트릭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국내 전력기기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함께 직접적인 시장 확대 기회를 누릴 것을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전력 생산을 늘리고 AI 시대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작년 8월 미시간주 유세에서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신산업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전력 생산을 확대하겠다"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새로운 시추, 파이프라인, 정유공장, 발전소, 원자로 건설을 승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도 전력인프라 교체 필요성 주장한 바 있다. 미 전력망은 1950년대 구축돼 노후화된 상태다. 최근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전력 수요가 더욱 급증하면서 미 에너지국은 미국 송전망 용량이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49% 확대돼야 한다고 보고했다. 미국 전체 전력 소비에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2%에서 2030년 8%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늘어나는 현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강화와 현지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은 작년 7월 앨라배마 공장 증설을 완료했고 LS일렉트릭은 텍사스주에 첫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작년 6월 미국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 2026년부터 초고압 변압기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다만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반덤핑 관세 우려는 남아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국내 변압기 업체에 6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다. 조연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공급 부족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에서도 과거와 같은 높은 관세가 다시 부과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AI·플랫폼 산업 격차 더 벌어질까 '먹구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정책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앞세울 전망이다. 인공지능(AI) 기술 패권을 강화하고 자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업계에선 기술 격차 확대를 넘어 빅테크 종속을 우려하고 있다.
AI 산업에선 AI 행정명령 철회로 자유로운 개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점쳐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AI 개발 과정에서 성능보다 사용자 안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AI 기술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보고 관련 수출 통제를 강화할 전망이다. 미국산 AI 반도체를 비롯해 오픈소스 모델 등 응용기술에 대한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자체 모델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기술 진입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트럼프 정부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쥐고 오픈소스도 막아버린다면 국내 기술 발전이 뒤처질 뿐 아니라 미국 의존도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업계에서도 빅테크 종속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구글 해체에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자국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규제 완화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반면 국내에선 시장 영향력이 큰 플랫폼을 사전 지정해 규제하는 플랫폼 규제안이 추진되고 있다. 권재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양국 플랫폼 기업 간 경쟁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며 "국내 플랫폼은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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