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텔 등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의 지난해 설비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를 선점한 일부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전기차 등 나머지 반도체 수요는 정체 상태다. 특히 중국의 신규 투자 속도가 둔화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올해도 반도체 설비투자가 감소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이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대만, 일본 등 주요 반도체 대기업 10곳의 설비투자를 취합한 결과, 2024 회계연도 설비투자액은 전년 대비 2% 감소한 1233억달러(약 180조8800억원)로 집계됐다. 직전해에 이어 2년 연속 감소세다. 당초 지난해 5월만 해도 연간 6% 증가한 1328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가 이뤄질 계획이었지만, 이후 95억달러가량 하향 조정됐다.
수요를 살펴보면 AI 반도체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반면, 전기차를 비롯한 다른 분야는 정체됐다. 닛케이신문은 앞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중국 경기둔화 여파로 스마트폰, PC 등 기기용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던 2023년과 달리, 2024년에는 기업들이 시황 회복을 기대하며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세웠으나 상황이 달라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당초 300억달러를 웃돌았던 연간 설비투자 계획을 20% 이상 축소했다. AI 반도체 경쟁에서 한발 뒤처진 인텔은 2021년 재진출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을 중심으로 손실이 급증하며 최근 창사 이래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1% 감소한 350억달러 수준으로 파악됐다. 닛케이는 "당초 예상보다 20억달러 줄어든 규모"라며 "PC, 스마트폰 수요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서는 한국의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고 짚었다.
유럽, 미국 등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며 관련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는 움직임이 확인된다. 세계 최대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독일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의 경우 2024 회계연도 설비투자 규모가 8% 감소했다. 여기에 각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육성책으로 생산 과잉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주요 기업들로선 2024년 설비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시설의 가동률은 70% 안팎으로, 통상적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영국 리서치회사 옴니아의 미나미카와 아키라는 "중국의 신규 공장 투자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반도체 투자가 2025년에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AI용 반도체를 주력으로 한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 위탁생산업체인 TSMC는 300억달러 이상을 투입, AI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역시 HBM 등 AI 사업 분야에 82조원을 투자하는 등 총 103조원을 투입한다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웠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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