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국회 본회의 통과
의료·금융·플랫폼 사업자
규제에 발목 잡힐까 전전긍긍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지난해 12월 말 인공지능(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통과된 AI 기본법으로 사업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AI 기본법이 사업자에 대한 규제 중심일 뿐 육성과 활용에 대한 방향은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영향 AI에 해당하는 의료, 금융, 교통, 에너지 등에 속하는 사업군은 AI 기본법으로 인한 직격타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규제 조항이 플랫폼 사업자와 특정 산업에 미칠 영향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잇츠,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플랫폼 사업자는 AI를 통해 경로 최적화, 배치, 고객 추천 시스템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업군이 고영향 AI 사업자로 규정될 경우 각 기업이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AI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규제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의 핵심은 ‘연결’이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를 효과적으로 이어주기 위해 AI가 활용된다. 그런데 AI 기본법이 인권과 기본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AI 학습과 발전을 가로막으면, 결국 핵심 기술 개발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택시 애플리케이션(앱) 우버만 봐도 6년 전부터 AI를 도입해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고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최대 음식 배달 및 배송 앱 사업자인 그랩은 싱가포르 정부의 ‘규제보다 육성’이라는 기조에 맞춰 AI 상담원과 자동 배차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활발히 운영 중이다. 덕분에 경쟁력을 강화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AI 기본법으로 고영향 AI 사업자를 규제의 틀 안에 가둬버리면 한국 플랫폼 사업자들은 기술 개발이나 활용 자체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배달 플랫폼의 경우 배달원 또는 기사가 받은 배차 건에 대한 설명이나 편향성을 검증하고 이를 고지하는 작업까지 의무화된다면, 이러한 부가적인 작업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배차나 배달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자동화 서비스도 어려워질 것이고, 이는 결국 소비자와 배달원 모두의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규제로 인해 국내 플랫폼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 경쟁력 개발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를 포기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펼쳐질 위험도 있다.
유럽연합(EU) AI 기본법은 AI를 육성하기 위해 시장 출시 또는 서비스 이전 단계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 및 개발 단계를 규제의 예외로 지정하고, 기업들에 AI를 활용하는 데 어느 정도 준비할 기간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 AI 기본법은 이러한 예외 규정조차 없다. 한국 AI 기본법은 국가를 위한 산업이나 국방 산업에만 예외를 적용한다. 규제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해서는 안 된다. AI 기술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의 경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다. 규제의 틀에 갇혀 기술 개발과 활용이 정체된다면 이는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넘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충분한 준비 기간과 사업 개발의 자유를 제공할 때 AI는 한국 경제 재도약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I 기본법이 규제라는 명목하에 한국 경제의 든든한 기둥인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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