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선포권은 잘못 행사됐지만
수사기관 공조·특검 지연 아쉬워
무죄추정 원칙 실종은 큰 우려
2016년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중형을 선고받은 지 10년도 안 돼 또다시 탄핵심판과 수사를 동시에 받는 대통령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그 무엇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의 신속한 수습이 절실한 때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나, 포고령을 통해 계엄해제 요구권이 있는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한 조치가 헌법과 계엄법에 반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계엄선포권을 잘못 행사했다고 곧바로 내란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계엄선포 당시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에 대한 여러 관련자의 일치된 진술에 따르면 적어도 ‘국헌문란’의 목적은 인정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소환통보에 일절 응하지 않고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 집행까지 거부하는 건 심각한 법치주의의 훼손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른바 내란 수사 과정의 몇 가지 아쉬운 점은 기록해 두고자 한다.
우선 경찰,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공조수사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다. 3개 수사기관이 조직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중구난방으로 수사 경쟁을 하다 보니 같은 피의자에 대해 압수수색은 경찰이, 구속은 검찰이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수처는 이첩 요청을 통해 윤 대통령 사건을 가져왔지만 출범 후 3년 동안 한 명의 피의자도 구속 못 한 공수처가 이런 큰 사건을 수사할 역량이 있을 리 없다. 어차피 관련 법상 검찰만 기소할 수 있는 사안인데 영장 집행은 경찰에 떠넘기더라도 윤 대통령 조사만큼은 직접 하겠다는 건 이번 수사를 추락한 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삼겠다는 욕심으로 비친다.
오동운 공수처장의 체포영장 청구·집행 예고 발언이나 관할을 어긴 영장 청구, 안일한 영장 집행 준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윤 대통령 측이 ‘수사권이 없는 기관의 위법한 수사’ ‘위법한 체포영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만 줬다.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다 신속한 특별검사 임명에 실패한 더불어민주당에도 수사 지연의 책임이 있다. 특검 추천권을 고집하던 민주당은 8일 재의결에 실패하자 다음 날에야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고, 야당의 비토권 조항을 삭제한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의 실종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유죄 확정 판결 전까지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죄인 취급해선 안 되고, 불이익을 주더라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으로 형사소송의 가장 중요한 대원칙이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다.
2심까지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나, 이미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1심에서 공직 출마가 제한되는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고, 10개가 넘는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다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 탄핵소추단을 대표하는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의 “윤석열은 법원에서 내란죄로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라는 국회 발언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역시 법의 테두리 내에서 신속·엄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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