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들어갔던 날, 대통령실이 관저 일대를 불법으로 촬영한 방송사들과 유튜버를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한 방송사는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한 날 ‘사상 최초, 헬기로 찍은 대통령 관저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서울 용산구 상공에서 촬영한 대통령 관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현장의 모든 사진기자와 방송기자 들은 가급적 높은 자리에 올라가 멀리 관저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의 그림자라도 담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높은 자리는 멀리 볼 수 있고 많은 것을 조망하며 사태의 본질을 도식화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것이 좋은 사진 혹은 영상인가의 문제는 별개다. 정보를 우선시하는 즉물적 보도에는 시점(視點)의 높이가 절대적일 때가 많다. 큰 사건이나 사고 혹은 이벤트를 촬영하면서 언제나 높은 시점에 대한 요구와 갈망은 크다. 요즘은 제한적이지만, 드론이라는 절대권력의 시점을 가진 촬영 장비를 쓸 수 있다. 오래전 사진기자들은 군이나 경찰 헬기를 얻어 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결정적 ‘승부’가 판가름 났다. 기자 개인의 운과 섭외력이 중요했고, 기자는 태워준 기장과 부기장 이름까지 신문 바이라인에 적었다. 시가지에서는 높은 건물에 올라가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차이가 절대적이다. 지금은 사유재산도 경비와 출입 통제가 철저해서 그 많은 고층 빌딩 어디에도 사전 인가 없는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진기자들은 꾸준히 조금씩 새로운 시점을 찾아낸다.
한남대로에는 세 개의 육교가 있다. 그중 관저와 가장 가까운 육교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경찰이 통행을 제한했는데, 여기서도 미리 올라가 있었던 사람과 뒤늦게 올라가지 못한 사람의 지위는 절대적으로 달랐다. 실상 올라가 보면 도로의 극심한 정체 모습 정도 보고 나면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이곳에서도 관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 집회를 연 남산 쪽 육교에서는 어서 지나가라고 재촉하는 경찰의 어깨 너머로 집회 장면을 촬영할 만했다. 육교의 높이는 딱 그만큼의 시각적 자유다.
경비원들은 관저 입구의 촬영은 물론 그 앞으로 지나가지도 못하게 막았다. 사진기자들에게는 대로 건너편에 사다리를 받치고 올라가 망원렌즈로 철망 사이 흐릿한 모습을 찍거나 시내버스라도 타고 관저 앞을 지나며 입구가 보이는 1~2초 정도의 순간에 사진을 찍어 쓰는 것이 최선에 가까웠다. 한남고가 위로 올라가는 버스의 앵글은 좀 높았고, 장충동 쪽으로 가는 버스는 조금 가까웠지만 낮았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운에 기대야 했다.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높은 자리’는 권력을 가진 정도를 말하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현장의 정보 전달자에게는 실제로 높은 자리가 권력과 다름없다.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원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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