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형 인하대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초빙교수
"국내 실버산업이 IoT(사물인터넷)와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이 시장 진입과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지난 12월 24일 만난 김수형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초빙교수(49)는 한국 실버산업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 일본 제품을 벤치마킹한 단순 복지용구가 시장의 주류였다면, 이제는 IoT 솔루션을 탑재한 스마트 케어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주거와 요양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부상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20년 가까이 '시니어 비즈니스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는 최근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시장이 미성숙했고, 기술적 한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저귀 센서로 배변 상태를 자동 체크하는 시스템부터 압력을 측정하는 스마트 방석까지, 혁신적인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특히 건강보험공단의 고령친화 예비급여 사업 같은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원에서 노년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이 한국 실버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다. 2000년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후, 그는 이미 미국의 선진 사례들을 연구하며 국내 도입을 꿈꿨다.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어시스트 리빙(Assisted Living) 같은 새로운 모델을 접했어요. 거동이 가능하면서도 일정한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주거 서비스죠.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모델들이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고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는 2008년 2학기, 보건학 전공으로 다니고 있던 아칸소대학교 수업 과제로 아시아계 미국인의 노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미래를 봤다고 한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였다"며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노년층이 급증할 것이고, 실버산업이 미래의 큰 먹거리가 될 것이라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런 통찰은 그를 노스캐롤라이나대학원으로 이끌었다. "보통 노년학과는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 등 날씨 좋은 곳에 많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샬럿 캠퍼스와 그린즈버러 캠퍼스 두 군데 합격했는데, 그린즈버러의 커리큘럼이 특별했다. 다른 학교들의 교육과정이 복지나 장기요양, 돌봄 중심이었다면, 그린즈버러는 시니어 비즈니스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시니어 제품을 발굴하고, 대학에서 실버산업에 관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기업에서 시니어 소비자 대상 전략을 세우는 등 '노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실버산업의 변화를 20년 가까이 지켜보셨는데, 가장 큰 변화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이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단순 복지용구 수준이었다. 그때는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제품이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요양 분야에서 먼저 해외 선진 브랜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국내 기업들의 혁신이 시작됐다. 특히 2019년부터는 IoT 솔루션을 갖춘 기업들이 많이 나타났다. 단순한 고무 패드가 아닌, 압력을 측정하는 스마트 방석이나 욕창 예방용 매트리스 같은 제품들이 등장했다. 물론 가격대에 대한 저항이 있지만, 건강보험공단의 고령친화 예비급여 사업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노년전문가 과정을 한국에 도입했다.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 선배가 설립한 '퓨처모자이크연구소'에서 금융노년전문가(RFG, Registered Financial Gerontologist) 과정을 한국에 도입했다. 금융노년전문가과정이란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단순히 은퇴설계나 상속 같은 재무설계뿐만 아니라 건강, 일자리, 여가, 주거, 요양, 복지 정책 등 고령층을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과정이다. 우리투자증권, 하나은행, 푸르덴셜, KB국민은행,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온 수강생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진행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다만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 같다.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고, 실버산업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이후에는 시니어를 위한 혁신제품을 발굴하는 일도 하지 않았나.
▲약 7년간 성남 고령친화종합체험관에서 근무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2014년에 개최한 국제 심포지엄이다. 실버산업전문가포럼과 함께 기획했는데, 예상했던 100명을 훨씬 넘어 200명이 참석했다. 미국식 컨퍼런스처럼 마케팅, 요양, 헬스케어 등 분과별 세미나를 도입하고, 처음으로 시니어 합창단 공연도 포함했다. 시니어와 기업, 기관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체험관에서는 혁신 제품 발굴에 힘썼다. 구강케어 전문기업 블루레오 제품, 기저귀 센서로 배변 상태를 자동으로 체크하는 케어비데 같은 혁신 제품들을 소개했다. 2017년 동경 국제헬스케어기술전시회 HOSPEX, 2018년 국제복지기기전 HCR 등 해외 전시회도 다니며 글로벌 트렌드를 파악하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도 지원했다.
-최근에는 교육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보건산업진흥원의 고령친화산업 디지털전환 전문인력 양성 사업을 진행했다. 강남대학교, 서울 50+재단과 협력해서 재직자 과정과 예비취업자 과정을 운영했다. 고령친화산업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접목하는 시도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시니어비즈니스 마케팅과 시니어하우징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시니어하우징 과목은 반응이 뜨겁다. 공인중개사, 공무원, 은행원들이 수강하는데,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 좋아한다.
-현재 실버산업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주거와 요양이 결합된 형태에서 발달할 수 있는 산업이 유망하다. 특히 어시스트 리빙(Assisted Living)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내가 2011년 미국 유학시절 연구 프로젝트로 다뤘던 주제인데, 당시에는 한국에 없던 모델이었다. 거동이 가능하면서도 일정한 서비스가 필요한 분들을 위한 주거 결합형 서비스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케어닥의 '케어홈'이나 케어링의 '케어링스테이'처럼 실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작년 케어닥 케어홈 개원식에 초대받았는데, 내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는?
▲실버산업의 변화와 혁신 사례들을 계속 발굴하고 알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를 통해 노화와 노인 돌봄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70대 중반의 아버지는 아직도 밭일을 하시는데, 주말마다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혼자 지내고 계셔서 대화 상대가 필요하신데, 이런 경험이 실버산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실질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에이징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 노년학이라는 분야는 공부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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