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사상 첫 단독 총파업
임금차별·수당체불 해결 위해 거리로
고객들은 불편 토로 "한참 기다려야"
27일 오전 9시16분 서울 황학동 IBK기업은행 신당역점. 2번 대기표를 뽑은 A씨(84세)가 10여분간 대기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업점 주변에서 갈빗집을 운영한다는 A씨는 거래대금 정산을 위해 주 1회 은행을 찾는다. 평소라면 10개가 넘는 창구 중 1곳에서 금세 은행원을 만났겠지만 이날은 지점장과 부지점장 2명, 본사에서 지원을 나왔다는 한 직원만이 영업점을 지키고 있었다.
A씨는 “평소에는 대기가 빨리빨리 빠지는데 오늘은 파업한다고 창구에 직원이 없네”라며 “한참을 기다려야 하나 보다. 조금 있다가 와야겠다”며 은행을 나갔다.
오전 9시20분께 점포를 찾은 60대 B씨도 기약 없는 대기에 지쳐 “파업하는지 몰랐다. 1월에 다시 찾아야겠다”며 지점을 떠났다. 타행 OTP(일회용비밀번호)를 기업은행 계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을지 상담하기 위해 내점한 고객이었다. B씨는 “4억원을 보내야 하는데 규모가 큰 만큼 거래가 정상적으로 되는지 확인해 보자는 은행원의 조언이 있었다”며 “필요하다면 기업은행 OTP로 다시 발급받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이 사상 첫 단독 총파업에 돌입하자 영업점에선 고객 불편이 불가피했다. 특히 신당역점은 황학시장 바로 앞에 위치한 데다가, 금융 애플리케이션(앱)보다 지점 방문이 익숙한 시니어 고객이 많아 대기인원이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오전 9시부터 30분간 신당역점을 찾은 총 12명의 고객은 1만원권 지폐를 500원짜리 동전 20개로 교환해 달라는 사소한 민원부터 주택담보대출 담보설정 관련 문의까지 다양한 요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업은행 신당역점과 도보로 1분 거리에서 20년간 부동산을 운영해 왔다는 C씨(67세)는 “황학시장 내 상가만 해도 1000세대 가까이 된다”며 “기업은행이 시장 바로 앞에 있는 만큼 황학시장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은행을 이용한다. 장사가 잘되는 사장님들은 엄청나게 (돈을) 맡기고, 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상가도 많아 불편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 고객도 은행 업무에 차질이 생겨 불편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당동 인근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30대 D씨 “회사일로 잔돈을 바꾸러 왔는데 파업 때문에 예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해 불편했다”고 전했다. 중견기업 자금팀에서 일하는 E씨는 통화에서 “미집행된 투자금을 예치하기 위해 급히 정기예금 상품을 찾는데 평소 거래하던 기업은행 지점은 아침부터 계속 부재중이더라”라고 토로했다.
이같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가 총파업에 나선 것은 ‘임금차별’과 ‘수당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기업은행 직원들은 공공기관 노동자라는 이유로 같은 업무를 하는 시중은행보다 임금을 30% 적게 받고, 직원 1인당 약 600만원에 이르는 시간외근무 수당도 정부가 총 인건비 제한을 내세우며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기업은행지부장)은 이날 오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서 “보상을 많이 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며 “동일노동을 하면 동일임금을 달라는 사회적 원칙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절규했다.
연대사에 참여한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3년간 기업은행 동지들이 정책금융 73%를 자영업자·소상공인에 공급했다”며 “그 덕분에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살았고 대한민국이 엄혹한 시절을 견뎠는데, 그 대가는 시중은행과의 임금격차와 시간외수당 미지급”이라고 꼬집었다.
한창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도 “차별하지 말라는 것과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장해 달라는 것, 이게 어렵나”라며 “우리는 단순히 임금 하나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상식과 원칙, 정의와 공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기업은행 노조는 임금차별·수당체불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측과 지난 9월부터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교섭이 결렬됐다. 이에 지난 12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88%의 조합원이 참여, 그중 95%(6241명)가 찬성한 바 있다. 기업은행 사측은 “기재부 결정사항”을 이유로 노조가 제시한 ▲2.8% 임금인상 ▲우리사주 증액 ▲보상휴가 등을 모두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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