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태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두 번째 탄핵 절차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계엄사태 직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내란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고발하고 본인들이 발의한 '내란 특검' 수사 대상에도 한 대행을 넣더니 이제는 자기네 말을 듣지 않으면 탄핵하겠다는 겁박을 실행에 옮겼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자리를 지키기 힘들다.
불과 열흘 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정 혼선을 우려하며 한 대행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했다. 일상 회복을 바라던 국민들 역시 비상계엄 사태 수습을 위한 여·야·정 국정협의체의 정상적 출범을 기대했던 때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탄핵 카드를 다시 꺼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의결정족수 논란이 일자 국무총리 시절 해병대원·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까지 탄핵 사유에 넣었다. 국정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음에도 이제는 정부 길들이기에 행정부 마비도 불사하겠다는 행태다.
애초 한 대행이 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자 탄핵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켜보겠다며 계획을 보류한 과정엔 노림수가 있다. 차기 대선 시기가 매우 중요한 민주당은 계엄 전후 상황을 수사하는 것보다 탄핵심판을 더 중요한 문제로 보는 듯하다.
내란 잔당 진압에만 집중하다 보니 국민을 불안케 하는 상황들도 반복된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 대행은 물론 비상계엄 선포에 동조한 장관 5명까지 탄핵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국무위원 총원 16명 가운데 직무정지를 제외한 15명 중 5명을 탄핵하면 국무회의 의결이 이뤄지지 않아 법안들이 자동 발효된다는 논리다.
이런 희한한 상황들은 대통령의 비겁함에서 시작됐다.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에 맞서겠다던 그는 검사 출신 '법 기술자'로 전락했다. 한 대행 역시 탄핵 의결정족수를 놓고 법적으로 다퉈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그렇기에 한 대행은 특검법은 여야 합의를 요청하더라도 국회 몫으로 추천된 재판관들은 임명했어야 옳다. 수사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탄핵심판대를 만들었어야 했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대법원까지 한 대행의 재판관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 대행의 소극적 권한행사로 시국은 '대통령 권한대행' 부재와 행정부 마비 위기에 놓였다. 더구나 1% 경제 성장률에 갇힐 상황에서 최 부총리는 정치 영역까지 맡게 돼 경제 위기는 방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계엄에 반기를 들어 국무회의장을 뛰쳐나온 사람'이라며 벌써부터 최 부총리를 길들이려는 모양새다.
이러는 사이 정국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여·야·정 국정협의체'는 출범부터 좌초 위기를 맞았다. 여야가 탄핵 계산기만 두드린 탓에 협의체 첫날은 의제 조율을 위한 실무협의조차 진행하지 못한 채 지났다.
눈 앞에 펼쳐질 다음 그림 역시 더 절박해진 대통령과 초조한 야권 대표의 볼썽사나운 벼랑 끝 전술이다. 늦출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극단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에 국회는 과거에 갇히고 국민 고통은 더 깊어지는, 이런 게 바로 무저갱이 아닐까 싶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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