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면담한 것이 화제였다. 단 15분 정도의 대화임에도 불구, 우리나라 정치·외교·기업인 중 최초 면담 소식에 시장은 환호했고 신세계그룹 주가는 상한가로 직행했다.
옆 나라인 일본을 보자. 지난 16일(현지시간) 있었던 트럼프 당선인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만남은 일본이 트럼프 2기를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전날 아베 신조 전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에 이어 손 회장까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1000억달러 투자’ 등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그러자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 외국 정상과 회동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날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서 지난달 7일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조선업에 대한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협조를 요청한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특히 대통령실은 트럼프 당선인이 윤 대통령과 무려 12분 동안 통화했다고 뿌듯해했다. 같은 날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 시간은 5분 남짓으로 상대적으로 짧았으니 말이다.
또 통화 며칠 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 연습을 재개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골프 외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쪽에서 먼저 러브콜을 던진 모양새였으니 고무됐으리라. 하지만 윤 대통령이 최소 지난 8월 말부터 골프를 쳐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심지어 이달 3일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는 골프가 외교용이 아니라 내란용이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2024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올 한 해 동안 썼던 칼럼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총 14번의 칼럼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관련된 주제가 절반 정도인 6번에 달했다. 트럼프 2.0시대가 현실화할 수 있으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실제로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실현되고 관세 전쟁이 선포된다면 대미 무역 흑자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특유의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걸림돌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부터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라고 꾸준히 경고해왔다. 그러면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2기가 시작될 경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뜩이나 제대로 된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여파가 심각한 대미 외교 공백을 낳았다는 점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차기 정부가 제대로 전열을 정비해 트럼프 측과 협상할 준비를 하려면 1년은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새 행정부에 대한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한데도 정상적 외교가 어려워 한국의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트럼프 한국 패싱' 우려마저 나오게 됐을까. 트럼프 2기 출범 전 대책 마련을 위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한 지적과 제언을 대통령실에서 패싱하지 않고서야 말이다. 포브스에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의 대가는 시간이 지나며 한국 국민 5100만 명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쓴 윌리엄 페섹의 칼럼은 그간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저성장의 공포를 다시 상기시킨다. 두고두고 곱씹어 볼 문구다.
조강욱 국제부장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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